지난달 21일. 전국적으로는 10번째이자 호남지역에서는 최초로 국민참여재판이 광주지방법원에서 열렸다. 국민의 재판 참여는 사법권 역시 주권자인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재확인한 것일 뿐만 아니라 그동안 국민이 열망하던 사법참여를 처음 도입한 것이라는 점에 의의가 있다.
호남지역에서 처음으로 실시되는 국민참여재판인데다가 사건 내용도 친모가 18개월된 자신의 어린 딸을 사망하게 한 사건이어서 지역민과 법조계 관련자 모두에게 상당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재판부는 사안의 중요성과 지역민의 관심을 고려해, 공판기일 전에 미리 공판준비기일을 열어 사건의 쟁점을 정리하고, 배심원 선정 및 공판진행 절차에 대해 사건당사자들과 논의하면서 재판기일을 정했다. 재판은 오전에 배심원 선정절차를 진행하고, 오후에 본격적으로 사건을 심리하는 순서로 진행됐다.
출석한 배심원 후보자들을 상대로 검사 및 변호인의 날카로운 질문들이 쏟아졌고, 후보자들은 진지하고도 성심성의껏 답변해 주었으며, 이 과정에서 탈락한 후보자들은 배심원으로 선정되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오후부터 본격적인 재판이 진행됐다. 배심원(또는 예비 배심원)으로 선정된 12명을 설득하기 위해, 검사는 영상자료까지 준비하면서 이해를 높였고, 변호인은 차분하면서도 강한 어조로 배심원을 설득해 나갔다. 배심원들 역시 재판장 및 검찰, 변호인의 말 한마디 놓치지 않으려고 열심히 귀를 기울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또 이를 잊지 않기 위해 메모까지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배심원과 마찬가지로 방청석에 있던 방청객 역시 자신이 배심원인 양 열심히 경청하는 모습을 볼 수 있어, 재판부는 시민들의 이러한 모습에 상당한 감동을 받았다.
증인신문 및 피고인신문 과정이 끝나고 이루어진 검찰 및 변호인의 최후 진술은 그야말로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필자는 20년 넘게 판사생활을 했지만, 이 날처럼 검찰 및 변호인이 진지하면서도 설득력 있게 열변을 토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이에 못지 않게 배심원들 역시 진지하고 열심이었다.
모든 절차가 끝나고 배심원 평의가 시작된 지 무려 2시간40분이 넘는 동안 배심원들은 자신의 결정에 의해 한 사람의 운명이 바뀔 수도 있다는 마음에 그 누구 하나 시간을 재촉하거나 결정을 재촉하는 사람이 없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였다. 배심원들 다수가 집행유예 의견을 제출하였고, 재판부는 심사숙고 끝에 내린 배심원들의 합리적인 결정을 따르기로 하여, 피고인은 당일 석방되었다. 이 날의 재판은 그야말로 검사, 변호인, 배심원이 각자의 위치에서 삼위일체가 되어 혼연의 정신으로 이루어진 결과라고 감히 말한다.
재판장인 필자로서는 이번 국민참여재판을 직접 보고 경험하면서 하나의 새로운 희망을 느낄 수 있었다. 국민들의 진지한 참여와 관심, 국민들을 설득하려는 검찰과 변호인의 열정적인 모습, 재판부의 균형있는 진행이 어우러지면 국민참여재판은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정경현 광주지법 부장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