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민담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옛날, 시골의 한 선비가 서울에서 거울을 사 가지고 왔는데 너무 신기해 남몰래 장롱 속에 감추어 두고 혼자만 꺼내서 보곤 했다.
남편이 장롱 속에서 무엇인가를 꺼내어 혼자만 보는 것을 본 아내는 남편이 없는 틈을 타 장롱 속에서 거울을 꺼내어 들여다보았다. 순간 깜짝 놀랐다. 젊은 여자의 모습이 불쑥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질투심이 머리끝까지 치민 아내는 시어머니에게 쫓아가서 남편이 젊은 첩을 얻어다 몰래 장롱 속에 감추어 두었다고 하소연했다.
하지만, 거울을 들여다 본 시어머니의 눈에는 늙은 할머니의 모습만이, 옆에 있던 시아버지가 보는 거울에는 늙은 할아버지의 모습만이 비치고 있었다.
그러나 선비의 아내가 거울을 들여다보았지만 여전히 아까 젊은 첩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화가 치민 아내는 첩에게 요사를 부리지 말라고 야단을 치면 첩도 지지 않고 아내가 하는 대로 흉내를 내므로 나중에는 끝내 거울을 깨고 말았다.
이 이야기는 그냥 스쳐가는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재판을 하면서 간혹 자기 모습에만 사로잡힌 ‘현대판 거울을 모르는 사람들’을 만나곤 한다. 그들은 자신의 주장이 거짓말이 아니라 진실이라고 철석같이 믿는다. 그리고 남들이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고 억울해 한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만을 보고 말하니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분쟁은 이렇듯 자신만이 옳고 상대방이 다르다고 생각할 때 시작된다. 이럴 때 그 누구라도 당사자들에게 거울이 어떤 것인지 설명해 주지 않고 그냥 틀렸다고만 하면 그들은 절대 승복하지 않는다.
재판도 마찬가지다. 재판은 지식이 아니라 지혜로 해야 한다고 한다. 당사자가 하나의 관점에 사로잡혀 자신만이 옳다고 주장할 때 판사는 지혜로운 현자가 되어 모두를 이해하는 열린 마음과 전체를 바라보는 혜안을 가지고 객관적 입장에서 당사자를 설득해야 한다.
모두가 함께 거울을 바라볼 수 있을 때 당사자들은 비로소 편견과 오해에서 벗어나 실체적 진실에 다가가고 분쟁은 화해로 나가게 된다.
이것이 법원에서 시행하는 구술심리의 요체이고, 판결보다 조정 화해를 강조하는 이유다.
법률문화가 정착된 미국, 영국, 일본 등의 경우를 보더라도 판결 비중이 10% 미만이고 주로 조정 화해로 분쟁이 종결된다고 한다.
조정 화해는 실체적 진실에 보다 더 다가가 모두가 승복하는 장점 외에도 최종 판결까지 가는데 걸리는 소송비용과 시간·정신적 고통·그리고 또 다른 분쟁을 조기에 예방하는 미래의 가치까지 가지고 있어 당사자가 화해를 위해 어지간하니 양보하더라도 판결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혹 재판받는 당사자가 있거든, 법원이란 당사자 간에 엉켜있는 실타래를 ‘판결’이란 이름으로 단칼에 베는 곳이 아니라 ‘대화와 설득’으로 엉켜있는 실타래를 하나씩 풀어나가면서 원래의 상태로 복원하는 곳이라는 인식을 가져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장용기 광주지방법원 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