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관이 재판 날에 출근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집에서 매고 온 넥타이를 재판용 넥타이로 바꾸는 것이다. 재판 준비를 마치고 법정으로 향하기 전에, 법복을 입고 나름대로 방법으로 마음가짐을 정리하는 것은 우리 법관들의 공통적인 일상이다.
업무를 수행하면서 고유의 복장을 입도록 하는 직업은 많지 않기에 법관에게 법복은 큰 의미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법관이 법복을 입기 시작한 것은 일본의 강점기 때부터이지만, 해방을 맞아 우리 법관들은 일제의 법복을 벗고 평상복을 입고 재판을 하기도 했다.
1953년 우리 고유의 법복을 최초로 마련하게 되었는데, 당시는 검은 색 가운데 무궁화 무늬가 새겨져 있는 것이 특징이었고, 모자도 착용했다. 1966년에는 더욱 간소한 형태의 법복을 마련하자는 의견이 제시돼 대학생들이 졸업식에 입는 졸업 가운과 같은 형태의 법복으로 변화되었으며, 이때 법모는 폐지됐다.
이 같은 법복의 형태는 30여 년간 유지되다가 1998년 새 시대에 걸맞은 법복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제시돼 새로운 법복이 마련되었고, 현재에 이르고 있다.
우리나라 법관은 신규 법관부터 최고 법관인 대법관에 이르기까지 모두 동일한 법복을 입으며, 여성 법관의 법복도 타이의 형태만 다를 뿐 가운은 동일하다.
요즘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재판을 소재로 한 경우가 많아 배우들이 법복을 입고 재판 장면을 연출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따라서 실제 재판을 경험하지 않았던 국민도 우리의 법복이 어떠한 형태인지 법정의 모습은 어떠한지를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주변 사람들과 대화중에 “판사님이 망치로 ‘땅땅땅’ 하고 결론을 내려 주세요”라는 얘기를 가끔 듣는다. 하지만, 우리 법정에서 ‘법봉(gavel)’이라고 불리는 망치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답변을 해주면 놀라는 사람들이 많다.
미국처럼 법관들이 법봉을 사용하는 나라도 있고, 영화나 드라마에서 극적인 효과를 연출하기 위해 망치를 두드리는 법관들의 모습만을 봐왔을 것이기 때문에 이상할 일도 아니다.
우리 법원은 국민이 법원의 재판 운영과 판결을 보다 신뢰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는 중이다.
법관들은 형사 재판이나 민사 재판 모두 서류에 의존하는 종래의 재판 방식을 탈피하고, 법정에서 사건 당사자들이 하는 말을 듣는 데에 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법원의 판결이 국민에게 신뢰와 존경을 받는 것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지, 판결 선고 후 법봉을 두드린다고 해서 저절로 생기는 것은 아닐 것이다.
법복은 재판의 권위를 상징한다. 하지만, 이를 입고 있는 법관은 그에 따른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재판 진행을 하다 보면 당사자들의 거짓말에 화가 나기도 하고, 설득력 없는 주장은 무시하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평상복을 입었을 때와는 달리 법정에서 입고 있는 우리의 법복은 법관의 자세를 가다듬게 하는 거울이라는 생각이 든다.
/배형원 광주지방법원 부장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