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도 이제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를 넘어 선진국의 문턱에 성큼 다가섰다.
그러면 과연 우리가 소위 선진국이라고 일컫는 나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고, 다른 나라에서 우리를 선진국으로 보아 줄 것인가.
필자는 일본 해외연수 생활을 경험했다. 1년간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일본은 과연 선진국이라는 것을 뼈 속 깊이 느끼고 돌아왔다.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는 ‘원칙이 지배하는지’ 여부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일본은 ‘원칙이 지배하는 사회’였다.
필자는 출국 몇 해 전 오른쪽 눈에 망막박리 증(눈 속의 망막이 떨어져 실명하는 병)이 생겨 큰 수술을 받고, 6개월에 1번씩 정기검진을 받아 오던 터였다.
일본 생활 중 동경여자의과대학 안과에 갔다. 서툰 일본어로 정기검진을 받으러 왔다는 말을 했는데, 일본인 의사는 왼쪽 눈을 검사했다. 그 의사는 “망막박리 증이 있는 환자는 다른 한쪽 눈도 이상이 있을 수 있는데, 검사결과 그 초기증상이 나타나고 있어 레이저 시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 있을 때 한 번도 검사하지 아니한 왼쪽 눈.
며칠 후 간단한 레이저 시술을 받았고, 그 후 귀국해서 계속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고 있다.
일본 해외연수 중에는 재판소(일본에서는 법원을 재판소라고 한다)에서 2개월간 재판진행, 재판제도 등에 관한 교육을 받는 기회가 제공된다.
형사재판을 방청하면서 받은 충격은 대단했다. 자백 사건인데, 진짜 형사소송법에 정한 절차대로 하는 것이었고, 대학교 다닐 때 본 모의재판과 똑같았다. 즉, 검사가 수사기록 별로 중요 문답을 일일이 읽고 피고인의 확인을 듣고, 흉기를 직접 피고인 앞에 제시하면서 2시간을 진행하는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의 형사재판은 어떤가? 하루 50∼70건을 처리하고, 자백하는 사건은 약 3∼5분, 다투는 사건은 10분 정도 밖에 시간이 소요되지 않는다.
두 가지 사례는 전혀 다른 영역의 것이지만, 일본 사회는 이미 원칙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말해 준다.
의사는 “교과서대로 양쪽 눈을 다 검사해야 한다”는 원칙, 판사는 “형사소송법이 정한 절차대로 재판을 진행해야 한다”는 원칙이 작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국내 법원에서도 민사재판에서 ‘구술변론주의’, 형사재판에서 ‘공판중심주의’를 내세워 재판절차의 개혁을 시도하고 있다. 이는 쉬운 말로 “법에서 정한 원칙대로 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법조인 사이에서는 이미 편법에 익숙해 버려 반발이 많다. 법조인이 법대로 하자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데 다른 분야는 더 어려울 것이다.
우리나라는 민주화를 거치면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때 법이 헌법이나 법률 위에 있고, 원칙이 사라 진지 오래며, 준법행위를 노동쟁의로 하면 범법행위인 것처럼 오해되기도 한다.
각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원칙을 지키고자 노력하고, 그것이 모든 분야로 확대될 때 우리도 “원칙이 지배하는 사회”, 즉 진정한 선진국이 될 것이다.

/문준필 광주지방법원 부장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