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학자 ‘마가렛 미드’의 보고에 의하면, ‘파푸아뉴기니’의 정글에 사는 ‘아라페시’라는 이름의 원시부족 사람들은 손가락만 살짝 다쳐도 이 사실을 온 부족 사람들에게 울며불며 공개한다고 한다. 그럼 다른 부족사람들은 혀를 차면서 온갖 말로 위로하고 함께 고통을 나눈다고 한다. 온 부족 사람들이 한 사람의 피해 감정을 공감하고 그 아픔을 함께 하는 것이다.
판사가 재판을 통해 만나게 되는 당사자들 역시 해결되지 않은 수많은 문제와 어려움에 직면한 채 법정에 나온다. 이들은 법정에서 저마다 자신의 어려움과 억울함, 좌절감 등을 호소한다. 그래서 사연 없는 사람이 없고, 이유 없는 사건이 없다.
그 중에서도 개인파산법정에 오는 당사자들은 그 누구보다 더 절망적일 수밖에 없다. 파산을 신청하는 채무자는 재정적 어려움으로 인하여 인생의 벼랑 끝까지 몰린 상태이고, 채권자 역시 채무자가 파산되면 자신의 채권이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는 위기감과 억울함을 갖고 법정에 나오기 때문이다. 누구 하나 안타깝지 않은 인생이 없고, 어느 인생 하나 소홀히 대할 수 없다.
그러나 파산을 신청하는 모든 채무자에게 파산을 선고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나름대로 객관적인 기준을 세워보지만 당사자들의 진술과 제한된 자료에만 의존해 파산 여부를 결정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한 사람의 인생을 단순히 채무액수나 부양가족의 수, 수입의 정도 등으로 평가할 수 있는가. 파산이라는 절차가 오히려 자신의 권리를 행사할 방법을 잃어버린 채권자를 또 다른 파산자로 전락시키는 것은 아닌가.
개인파산업무를 맡게 되면서 법리나 판례보다 세상을 더 고민하게 되었다. 택시를 타면 기사의 하루 수입이 걱정되고, 동네 구멍가게를 가면 그날 매출이 궁금해졌다. 개인파산업무를 통해 비로소 사건이 아니라 사람을 볼 수 있게 되었고, 기록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인생을 보게 된 것이다. 또 개인파산법정의 당사자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파산선고 그 자체보다도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판사의 진심 어린 이해와 응원임을 알게 되었다.
채무자에게는 파산선고에 앞서 그동안 그들이 겪었을 인생의 어려움을 위로하고 경제적으로 갱생할 수 있는 힘을 심어주고, 채권자에게는 부당하게 자신의 채권을 박탈당했다는 억울함을 주지 않도록 당사자들을 향해 끊임없이 ‘아라페시 부족의 노래’를 불러주는 것, 그것이 바로 개인파산업무를 담당하는 판사로서 가장 최우선에 두어야 할 가치임을 알게 된 것이다.
며칠 전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장미란 선수가 그 몸무게의 3배에 달하는 무게를 들어올리면서 세계신기록으로 역도 금메달을 따냈다. 장미란 선수의 모습은 어느 미스코리아의 빼어난 미모보다도 아름다웠고, 어느 유명인의 연설보다도 큰 감동을 선사했다.
우리는 가끔 스스로 감당해 내지 못할 삶의 무게에 좌절하고 포기하곤 한다. 그러나 그러한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사람의 모습은 그 무엇보다 위대하고 숭고하다. 개인파산법정에 오는 모든 당사자들에게도 장미란 선수와 같이 자신의 삶의 무게를 거뜬히 들어올릴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진심으로 기도해 본다.
/이은혜 광주지방법원 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