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와도 바꿀 수 없는 시인, 셰익스피어”. 영웅숭배론(원제 ‘On Heroes, Hero-worship, and Heroic in History’)의 저자인 토머스 칼라일이 자신의 저서를 통해 남긴 말이다.
칼라일은 위 저서 중 ‘시인으로 나타난 영웅’ 편에서 셰익스피어를 기리며 위와 같은 찬사를 보냈다.
아직 형태를 갖추지 못한 영국인들의 생각과 가치관·사고방식·행동양태·정체성 및 실생활 등 영국인들을 둘러싼 무의미한 파편들을 모아, 비로소 그에 걸맞은 언어의 옷을 입혀 준 당대 최고의 문학가에 대한 과장된 칭송쯤으로 보면 될까.
인도인이 들으면 불쾌하기 짝이 없겠지만, 어쨌든 칼라일은 ‘자신들을 있는 그대로 표현해 줄 소리를 찾았다는 한 민족의 기쁨’을 위와 같이 조금은 과격한 방법을 빌어 표현했던 것 같다.
이 대목에서 문득 범죄 피해자들을 떠올리게 되는 것은 어쩌면 검사 생활을 하면서 얻게 된 해묵은 직업병의 소치는 아닐지.
언제부터인가 인간사회는 범죄 피해자의 개인적 보복이라는 무질서한 피의 향연을 금지하는 대신 국가의 형벌권 행사라는, 비교적 제도화된 형태의 정제된 응보만을 허용하게 되었다.
국가가 사적 제재를 대신해 주기로 국민에게 약속한 이상, 가해자에게 적절한 제재를 가하고 범죄 피해자의 상한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것 또한 국가의 은혜로운 배려가 아닌 의무의 영역으로 넘어왔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지난 3일 전국 56개 범죄피해자지원센터를 아우르는 ‘전국 범죄피해자 지원연합회’가 임채진 검찰총장과 이용우 연합회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현판식을 열고 공식 출범했다.
검찰과 민간단체인 연합회가 기존의 피해자 지원을 보다 체계화하여 법률상담이나 응급진료, 보호시설 안내, 의료적·경제적 지원, 화해 중재, 신변보호 등 피해자에 대한 실질적인 보호와 원조활동을 피해자 지원의 기치 아래보다 본격적으로 수행할 계획이다.
광주지방검찰청은 지난 2005년 1월 25자로 광주 범죄피해자지원센터를 개원한 이래 피해자의 신변보호, 법률 상담, 사건처리 관련 정보 안내 등 다양한 피해자 지원활동을 전개해 오고 있다. 이번 ‘전국 범죄피해자지원연합회’ 공식 출범은 전국에 산재하여 있는 일선 범죄피해자지원센터를 하나로 아울러 보다 체계적이고 효과적인 제도적 지원의 틀을 마련하였다는데 그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마땅히 하소연할 곳도 없는 피해자의 절박하고도 안타까운 심정을 헤아려 볼 때 매우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전국적 연합회가 이제 겨우 걸음마를 떼었으니 갈 길은 아직 멀겠지만, 시작만으로도 충분하다. 어깨를 나란히 하고 함께 걷는 것만으로도 피해자에게는 큰 힘이 될 것이다.
전국적 단체로 거듭난 범죄 피해자지원연합회가 향후 적절한 언어와 몸짓을 통해 그들의 오랜 아픔을 대신해주고 억눌린 울분을 대변해 주는 피해자의 자랑스런 셰익스피어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마지 않는다.
이희찬〈광주지방검찰청 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