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미국에서 촉발된 금융 위기로 인해 우리나라 실물 경제도 좋지 못하다. 경제사정이 좋지 않다보니 물건값을 받지 못하거나, 반대로 돈만 떼이고 물건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이에 따라 가압류·가처분 등 법적 조치를 생각하는 사람도 많아지는 듯하다.
하지만 성급한 보전 처분은 오히려 채권자가 채무자로부터 돈을 받지 못하게 되는 등 의외의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어 주의해야 한다.
얼마 전 있었던 일이다. 공사대금을 받지 못해 채무자의 건설공제조합에 대한 출자증권을 가압류했던 채권자가 채무자 소유이지만 부동산 가액보다 더 많은 근저당권이 설정되어 있는 부동산에 대한 가압류를 신청했다. 필자는 종전의 출자증권 가압류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가압류 신청을 하는 이유를 소명하라고 했다.
이에 대해 채권자는 건설공제조합에 대한 출자증권을 가압류했더니 채무자가 건설공제조합으로부터 보증을 받지 못해 새로운 공사를 수주하기 어려워 종국적으로 채무자로부터 돈을 받기가 더 힘들어질 것 같아 위 출자증권 가압류를 이미 취하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가압류로 인해 채무자의 경제 사정, 사업 여건 등이 악화돼 결과적으로 채권자에게 불리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 비단 위 출자증권 가압류의 문제만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채무자로부터 돈을 받지 못하면, 채무자 소유의 부동산 또는 금융기관에 대한 예금채권을 가압류하게 된다. 이 같은 부동산 가압류 또는 채권 임시압류가 있게 되면, 은행 등 금융기관으로부터의 신규 담보대출, 신용대출이 사실상 불가능하게 될 뿐 아니라, 그 채무자가 종래 금융기관에 지고 있던 채무의 기한이 일시에 도래하게 되고, 종국적으로 금융기관은 채무자 소유 재산을 가압류하거나 기왕 채무자 소유의 부동산 등에 설정된 근저당권 등 담보권을 즉시 시행하려고 한다.
위와 같은 연쇄적 가압류로 인해 채무자가 회사의 대표이사이거나 개인사업자인 경우는 도산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고, 따라서 채권자로서는 가압류한 재산을 제외하고는 채무자로부터 돈을 회수할 방법이 없어지는 예상치 못한 결과가 생기게 된다.
문제는 가압류는 저당권 등 물적 담보와 달라서 가압류 순서에 따른 우선순위가 없다는 점이다.
즉, 여러 명의 채권자가 가압류를 하게 되면 가압류의 시간순서에 관계없이 각자의 채권비율에 따라 나누어 가지게 되므로, 채권자(특히 금융기관들에 비해 청구금액이 적을 수밖에 없는 개인 채권자)는 애초의 기대와 달리 자신의 채권액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소액만을 변제받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부도덕한 채무자 때문에, 위와 같은 사정을 알면서도 가압류 등 보전처분을 신청할 수밖에 없는 선량한 채권자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법대로’의 해결이 종국적으로 채무자뿐 아니라 채권자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채권자와 채무자가 서로 이해하고 조금씩 양보하는 것이 가장 빠르고 바람직한 분쟁 해결 방법이라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다.

/한기수 광주지방법원 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