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개월 전 검사로 임관할 때는 사회정의를 구현하겠다는 거창한 포부로 시작했건만, 밀려드는 수많은 사건 처리에 여념이 없다 보니 어느새 그런 다짐을 잊고 지낸 것 같다. 그러던 차에 우연히 모 방송국의 드라마를 보게 되었다.
사법연수원 검찰 교수인 김혁재(배우 문성근)가 연수생들에게 정의의 여신상이 눈을 가리고 있는 이유를 묻자, 연수생들이 그 이유를 말하는 장면이 있었다.
그때 문득 ‘정의란 무엇일까’라고 자문하게 되었다. 혹시 정의를 대변할 수 있는 상징물을 보면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동양,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정의의 상징은 해태(‘해치’라고도 함)이다. 해태는 바르지 못한 사람에게는 덤벼들어 뿔로 받기도 하고, 물어뜯기도 해 예로부터 정의를 수호하는 상상의 동물로 불리고 있다.
서양에서는 이집트신화에 나오는 태양신 라(ra)의 딸인 마아트(maat), 그리스신화의 디케(dike), 로마신화의 유스티치아(justitia)가 정의의 여신으로 상징되고 있다. 오늘날 영어로 정의를 뜻하는 저스티스(justice)는 유스티치아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디케와 관련해서 재미있는 신화가 있다. 하늘이 처음 열리던 황금시대에는 신과 사람들이 행복과 평화를 느끼면서 살았다고 한다. 그러나 제우스가 일년을 사계절로 나누어 생성과 소멸을 유도하면서 질서와 다툼이 뒤섞인 은의 시대가 되었고, 사람들의 욕망은 계속 심해져 전쟁을 일삼았는데 이때를 청동의 시대라 부른다. 청동의 시대에 신들은 사람들이 싫어 하늘로 올라갔지만, 정의의 여신인 디케만은 지상에 남아 손에 천칭을 들고, 분쟁 당사자들을 천칭에 올려놓고 옳고 그름을 쟀다고 한다.
이후 철의 시대가 되면서 사람들이 살상무기로 싸우고 죽이며 타락하게 되자 디케 마저도 손에 천칭을 들고 하늘로 올라갔고, 디케는 처녀자리가, 천칭은 처녀자리 옆에 천칭자리가 되었다고 한다. 우리가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정의의 여신상은 눈을 가린 채로, 오른손에는 칼을, 왼손에는 저울을 들고 있는 여신의 모습이다.
눈을 가리고 있는 것은 정의를 판정에 있어 사사로움을 떠나 공평해야 함을 의미하고, 저울은 엄정한 정의의 기준을 의미하며, 칼은 정의가 실현되기 위해서 힘이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하지만, 정의의 여신 모습은 시대 상황, 만든 작가의 의도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는데, 어떤 여신상은 진실을 정확히 바라보라는 의미에서 눈을 뜨고 있기도 하고, 모든 분쟁을 주관적 판단이 아닌 법률에 의해 해결하라는 의미에서 칼 대신 법전을 들고 있기도 한다.
사람들의 분쟁을 디케처럼 정확하게 간파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검사도 한낱 인간인지라 사건이 발생하면 그 후의 상황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다.
과학기술의 발달에 따라 지문·유전자·심리분석·디지털증거 등 과학적 증거로 진실을 밝혀보려고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지만 과학적 수사만으론 진실에 접근하는데 한계가 있을 뿐만 아니라 갈수록 지능화되고 있는 범죄수법으로 인해 진실 규명이 매우 어려운 것이 수사현실이다. 하지만,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진실을 밝혀내라는 국민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모든 사건 처리시 최선을 다하다 보면 언젠가는 밤하늘에 반짝이는 정의의 여신인 디케에 버금가는 검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송민경 광주지방검찰청 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