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소설가 미하엘 엔데의 작품 ‘모모(Momo)’의 주인공인 ‘모모’는 예쁘지도 깨끗하지도 않은 아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모모를 즐겨 찾는 이유는 모모가 모든 이들의 말을, 넋두리를 가만히 들어주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어리석은 사람은 아주 사려 깊은 생각을 할 수 있게 되고, 결정을 내리지 못하거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알게 된다. 또 수줍은 사람은 대담한 사람이 되고, 억눌린 사람은 희망을 갖게 된다.
모모는 그렇게 귀 기울여 들을 줄 알았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시간에 쫓겨 지내기보다는 매 순간을 의미 있게 보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과 이것 못지않게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하루하루가 바쁘게 흘러가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엔 관심을 둘 여유조차 없이 살아가는 요즘 같은 시대에 생각해 볼 만한 주제이다.
필자도 문제에 부딪혔을 때 지인들을 붙잡고 하소연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런 경우 상대방으로부터 특별히 해결책을 제시받지 못하더라도 상대방이 진지하게 들어주고 같이 고민해주는 것만으로도 답답했던 마음이 시원해지는 기분을 느끼곤 한다.
또 이야기를 하다 보면, 복잡한 것만 같던 문제점들이 하나씩 정리되어 가는 느낌을 받기도 하고, 혹시 이런 점은 내가 잘못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법원을 찾는 당사자들이야말로 이야기할 사연이 많을 것이다. 그래서 작년 초 처음 임관하면서, 적어도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주는 판사가 되자고 다짐했다.
그런데 막상 업무를 시작하고 나서는 다짐했던 것과 달리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차분히 들어줄 만한 여유를 갖지 못했던 것 같다. 재판절차를 진행하면서 이야기가 다소 길어지거나 사건을 해결하는 데 필요하지 않은 내용이라 여겨지는 경우에는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당사자의 발언을 제지하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제출한 서면에 이미 나왔던 이야기이고 당사자의 변명이나 신세 한탄에 불과한 것이었다고 핑계를 대보기는 하지만, 그래도 당사자가 하려던 얘기를 제지하고 사건에 필요한 최소한의 얘기만 잠시 나누다가 올 때면 마음이 무거워지곤 했다.
판사로 임관한 지 만 1년도 채 되지 않은 짧은 기간이었지만, 지난 1년을 돌이켜보면 시간을 갖고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 본 사건일수록 당사자들 사이에 쉽게 화해가 이루어지고, 그렇지 않더라도 당사자들이 판결결과에 승복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모모’에 등장하는 거북이 카시오페이아의 말처럼 느리게 갈수록 더 빠른 것일지도 모르겠다.
올해는 모모를 본받아 당사자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귀 기울여 듣는 여유와 열의를 지닌 판사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더불어 법원을 찾는 당사자들도 자신을 뒤돌아보고, 서로 양보할 수 있는 여유를 가졌으면 한다.
/김지연. 광주지방법원 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