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너먼트. 스포츠가 대중화된 시대에 사는 우리에겐 너무나 익숙한 단어이지만, 사실 토너먼트는 경기 ‘방식’에 관한 용어는 아니었다.
이는 원래 갑옷으로 중무장한 채 말에 올라 긴 창으로 상대방을 찔러 쓰러뜨리는 중세 기사들의 마상(馬上)시합을 일컫는 말이었다. 하지만 토너먼트는 영주의 결혼식 같은 때에만 드물게 열렸고, 시합이 열리더라도 한 번 패배한 자는 바로 탈락되는 경기방식이 채택되었다. 이처럼 제한된 형태로 시합이 이뤄진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너무도 위험했기 때문이다. 시합자체가 실전이나 다름이 없어 기사들이 심한 부상을 입거나 심지어 죽기까지 한 것이다.
토너먼트와 유사한 면을 가진 것이 우리의 고소제도인 것 같다. 대검찰청의 연말 통계에 따르면 작년 한 해 고소사건의 73%에 대해 불기소처분이 이뤄졌다. 고소를 당했다는 이유만으로 죄 없이 수사기관에 불려온 사람이 전체 피의자의 절반을 훌쩍 넘어선 것이다.
재정신청에 관한 통계를 보면 마음이 더욱 무거워진다. 재정신청이란 검사의 불기소처분을 받은 고소인이 법원에 그 당부를 다시 한 번 물을 수 있는 제도인데, 그 대상을 모든 고소사건으로 전면 확대한 작년 한 해 동안 5천67건(1만757명)에 대한 재정신청이 접수되어 그 중 94건(114명)이 재판에 회부되었다.
인원을 기준으로 할 때 1.06% 가량의 재정신청 사건에 대해 공소제기 결정이 이루어진 셈인데, 그 중 상당수에 대해서는 무죄판결이 선고되었다.
단 한 명이라도 재정신청절차를 통해 유죄 선고를 받았다고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할 것이다. 억울한 피해를 입은 사람이 재정신청을 통해 구제를 받을 수 있다면 얼마든지 사법비용을 지불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위와 같은 통계를 보면, 불기소 처분된 과반수 이상의 피의자와 그 중 다시 재정신청에 회부된 99%의 피의자는 결국 덧없는 송사에 휘말린 셈이 아닌가.
이 같은 통계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다른 법률 선진국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은 우리나라의 고소사건 비율. 단순한 보복감정에 치우친 악의적 고소와 맞고소, 허위사실에 바탕을 둔 무고성 고소. 이 모든 것들이 우리 모두를 부끄럽게 만드는 서글픈 우리 법률문화의 자화상은 아닌지.
고소를 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뼈아픈 마음도 이해는 가지만, 분명 고소는 중세의 토너먼트와 같은 단점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싶다. 바로 어느 쪽이든 필연적으로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하지만 결투를 받아들이는 입장에선 상대의 도전을 피할 방법도 없고, 창이 아닌 방패만을 들고 나와야한다는 점에서 더욱 위협적인 것이 바로 고소사건의 토너먼트이다.
대의와 명분이 있다면 전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무엇인가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얄팍한 생각에서 비롯되는 토너먼트는 결코 그 해답이 아닐 것이다. 부당하고 위험천만한 ‘종말의 토너먼트’가 아닌, ‘토너먼트의 종말’을 향해 함께 나아가는 기축년 한 해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마지 않는다.
/이희찬 광주지방검찰청 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