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소액 재판을 담당한다. 소액 재판은 청구금액이 2천만 원 이하인 사건의 경우 증거조사 절차 간소화 등을 통해 신속하게 결론을 도출할 수 있도록 하는 재판절차이다.
소액 재판은 비교적 금액이 적은데다 변호사가 아닌 사람도 소송대리를 할 수 있기 때문에 비법률가인 개인들이 재판에 참석하는 경우가 많다. 재판 경험이 거의 없는 분들이 소송을 하다 보니 재판준비도 부족하고 재판절차에 대한 이해도 부족하여 판사가 이것 저것 물어보고 입증이 부족한 부분들에 대해선 입증촉구를 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그러다 보면 “애초에 계약 단계에서부터 조금만 더 주의를 기울이거나 계약 내용을 문서화했더라면”이라는 아쉬움이 남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대여금 사건의 경우 차용증도 없이 통장 송금 자료만으로 청구하는 경우가 많다. “통장으로 돈을 보내줬으니 빌려준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이때 돈을 받은 사람은 그 돈은 빌린 돈이 아니라 투자금이라거나, 나에게 빌려준 것이 아니라 자신은 중간에서 전달자 역할만 했다거나 하는 식으로 다툰다.
하지만, ‘빌려준 돈’을 입증할 책임은 돈을 빌려준 사람에게 있다. 애초에 차용증을 작성해 두었으면 위와 같은 번거로움이나 위험을 피할 수 있다.
외상거래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생긴다. 대게의 경우 공급자 측에서 작성한 거래명세표나 장부 같은 것을 증거로 제출하는데, 상대방이 이를 인정하지 않으면 막막하다. 월말이나 일정한 기간 단위로 미수액을 확인하여 두거나 최종거래일에 잔액에 대한 확인을 받아둔다면 분쟁의 소지를 없앨 수 있을 것이다.
더욱 딱한 것은 공사대금을 구하는 경우다. 수차례에 걸쳐 하도급이 이뤄지는 경우에 소규모 시공업자들은 대개 원도급 회사와 구두계약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 구두 계약이라는 것도 회사 대표와 직접 하는 것이 아니라 무슨무슨 이사라거나 현장소장이라고 적힌 회사 명함 한 장 가지고 다니는 사람과 계약을 함으로써 분쟁이 발생하곤 한다. 돈을 받지 못한 공사업자가 딱하기는 하나 위와 같은 경우에 회사에 책임을 묻기가 쉽지 않다. 이 같은 사정들에 대한 입증 자체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위와 같은 사례의 경우 만족할 만한 입증이 이뤄지지 않으면 원고가 구하는 금액 중 일정액만을 지급하라는 식으로 조정을 권유하곤 한다. 이때 의외로 원고 측에서 조정을 거부하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이 경우가 제일 답답하다. 판사가 납득할 만한 증거가 있어야 하는데 증거 제출은 못하면서 자기 받을 것은 다 받아야겠다는 것이다. 이 경우 증거가 없어 원고 청구를 인정해주기 어렵다는 취지로 판결을 하면서도 원고의 현명하지 못한 선택에 대한 아쉬움을 떨쳐내기가 어렵다.
아무쪼록 거래단계에서부터 계약서나 차용증 등을 작성하는 관행이 정착되었으면 좋겠다. ‘다 믿고 거래하지 누가 일일이 계약서를 쓴답니까’라며 법정에서 하소연 아닌 하소연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믿고 거래했다가 ‘큰 코 다치는’ 경우가 너무나 많은 것 같다.
위인규〈광주지방법원 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