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철 대법관의 버티기가 계속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정치인이나 고위공직자가 부적절한 처신으로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고서도 자리보존에 급급한 모습을 보는 것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가 우리나라 최고법원의 대법관이라는 점에서 이번 사태는 안타깝고 씁쓸하다.
모든 재판과정에서 소송관계인들이 마지막까지 반드시 붙들고 있는 것은 사법부에 대한 신뢰다. 세상이 아무리 어지럽더라도 사법부 만큼은 법관이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오로지 헌법과 법관의 양심에 따라 공정한 판결을 할 것이라는 신뢰가 그것이다.
이러한 사법부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복잡다기하고 첨예한 갈등과 법적분쟁이 사법부의 판단을 통해 조정되고 해결되는 것이 사법시스템이다. 따라서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다면 그 사회의 갈등해결구조가 무너지는 것과 다름이 없다.
신 대법관의 부적절한 재판관여 행위는 대법원 진상조사단의 조사를 통해 그 사실관계가 이미 드러났고, 판사들도 지난달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통해 신 대법관의 행위가 재판관여 행위라는 점에 공감하는 기류였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관들이 집단행동으로 나아가지 않고 윤리위의 결정을 기다린 것은 사법부 스스로의 자정력에 의해 사태가 수습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충정으로 보인다.
그러나 신 대법관은 “이번 사태로 얻은 굴레와 낙인은 제가 이 자리에 있는 동안 짊어지고 갈 수 밖에 없는 짐”이라며 물러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혀 보는 이로 하여금 분노를 넘어 연민의 정과 서글픔을 금할 수 없게 하고 있다.
작금의 사태는 신대법관이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지 않는 한 해결의 통로를 쉽게 찾을 수 없는 상황이다. 헌법은 탄핵 또는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받지 않고서는 법관의 신분을 박탈하지 않으며, 징계처분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정직, 감봉, 기타 불리한 처분을 당하지 않도록 신분을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헌법상 법관의 신분보장이라는 보호막이 국민을 위한 공정한 재판을 위해서가 아니라, 부적절한 재판개입으로 사법부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는 원인을 제공한 대법관에 대한 면책조항으로 악용되고 있어 안타까울 뿐이다. 상식에 비추어 재판개입이나 사법부 독립과 관련된 논쟁의 한 가운데 서 있는 자체만으로도 대법관으로서 권위와 자부심이 땅에 떨어졌고 더 이상 버틸 명분이 없는데 버티는 것은 안될 일이다.
신 대법관 스스로 인정하는 바와 같이 ‘굴레와 낙인을 짊어지는 짐’이 비단 신 대법관 개인의 치욕에서 멈추지 않고 수많은 선의의 다른 법관과 사법부 전체의 치욕과 신뢰상실로 이어질 수 있는 심각한 상황임을 직시해주시길 부탁드린다.
신 대법관님! 시비곡직(是非曲直)이 불을 보듯 훤한 일에 ‘수서양단(首鼠兩端·구멍에서 머리만 내밀고 좌우를 살피는 쥐)’ 처럼 두 마음을 가지고 기회를 엿보지 마시고, 신 대법관님 자신을 위해, 그리고 사법부의 신뢰를 위해 결단을 내려주시길 바랍니다. 이미 때가 늦은 감이 있지만 그래도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고 하지 않은지요.
김정호〈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