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성원들의 합의에 의하여 제정·시행되는 모든 법령들은 나름의 입법 취지가 있지만, 특히 형사사법 제도는 국민들의 자유권, 재산권 등을 심대하게 제한할 수도 있는 만큼 당대의 사회상과 고민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해 우리 사회의 형사사법제도에 대한 고민의 결과물들 중 일부가 구랍 29일 ‘형사사법절차 전자화 촉진법’, ‘약식절차에서의 전자 문서 이용 등에 관한 법률’ 및 ‘DNA 신원확인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이라는 이름으로 국회 입법절차를 걸쳐 올해 시행될 예정이다.

‘형사사법절차 전자화 촉진법’과 ‘약식절차에서의 전자문서 이용 등에 관한 법률’의 취지는 기존 종이 위주의 형사기록 조제를 지양하고 형사소송서류의 전자화를 구현하겠다는 것이다. 서류를 철끈으로 묶은 형사기록을 경찰-검찰-법원으로 송치하는 재래의 형사 사법 절차에 대하여는 종이의 낭비, 소송절차의 과도한 지연 등의 문제가 지적되곤 하였다.

이번 입법은 최첨단 IT 기술을 활용한 ‘사이버 재판시대’가 개막되었음을 시사한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 사건처리기간이 현격히 단축되고, 발송 및 종이비용 등 연간 288억 원의 예산절감 효과도 있다.

우선적으로 적용되는 음주·무면허사건의 경우, 사건 발생부터 판결 확정까지의 소요 시간이 기존 120일에서 15일 정도로 단축될 것으로 보인다. 현대인들은 정보에 대한 빠르고 편리한 접근을 갈망하고 있는데, 구축 예정인 ‘온라인 형사사법 포털’을 통해 24시간, 365일 언제나 자신의 형사사건 정보를 실시간 조회할 수 있고, 관련 정보를 상시 제공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해 세칭 ‘조두순’ 사건은 아동 성폭력 등 흉악범죄에 대한 우리 사회의 대처 방안을 심각하게 고민하는 계기를 만들었고, 국회에서 통과된 ‘DNA 신원확인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은 이러한 사회적 담론에 대한 정부 차원의 첫 결과물이다.

위 법률은 살인, 아동·청소년 성폭력, 강도, 방화 등 11대 유형의 강력범죄 대상자의 구강점막을 채취하여 DNA 데이터베이스를 구축·관리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DNA 데이터 베이스는 현재 흉악범 재발방지를 위해 시행 중인 ‘전자발찌’와 더불어 첨단 과학기술을 적용한 획기적이고 실효성 있는 흉악범 검거 대책의 소임을 다할 것으로 기대된다. 축적된 DNA 정보자료를 활용하여 범인검거율을 획기적으로 높이고, 범인들의 추가적인 범행 자제를 유도할 뿐만 아니라, DNA 신원확인으로 무고한 수사대상자를 조기에 배제함으로써 인권신장에도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새로 도입되는 이번 법률들은 그만큼 우리 사회의 과학기술이 형사사법절차에 활용될 수 있을 만큼 토착화되었음을 방증하는 것으로 매우 의미심장하다. 그렇지만 아무리 좋은 제도인들 적정한 운영이 없으면 예산만 허비하는 낭비행정으로 전락하고 만다.

새 제도의 성공적인 정착을 위하여 실무자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지속적인 관찰, 격려과 애정 어린 비판이 절실하다. 아울러 새해에도 계속 진행될 참고인소환제도, 플리바게닝(plea bargaining) 등 형사사법제도 선진화를 위한 주요 논의들에 대하여도 많은 분들이 깊은 관심을 가져주시기 바란다.

/홍용화 광주지검 순천지청 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