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검사로 재직하면서 피의자, 피해자 및 그 가족들 등 사건관계인으로부터 다양한 내용의 부탁을 받은 경험이 있다. 대부분 피해를 입었다거나 억울하게 조사를 받고 있으니 자신에게 유리하게 결론을 내달라거나 반대로 피의자를 엄하게 처벌을 해 달라는 등의 부탁이다.

그러나 필자를 비롯한 검사들은 그 부탁을 모두 들어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검사는 중립적인 자세에서 실체 진실을 밝혀야만 하는 의무가 있고 또한 사회 정의를 위해서는 그들의 부탁은 마음속에만 간직한 채 법과 원칙대로 처리를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필자는 1년 전 공갈 등 사건으로 경찰에서 구속 송치된 조직폭력배 조직원으로부터 황당한 부탁을 받고 이를 들어준 적이 있었다. 독자 분들도 공감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되기에 잠깐 그 일화를 소개해 보겠다.

그 무렵, 필자는 관할 경찰을 지휘하여 50여 명의 조직폭력배들이 개입된 사건을 한창 수사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그 중의 한 조직원(편의상 ‘그’로 지칭)이 조사를 받고 있었다.

기록상 ‘그’의 죄질은 결코 좋지는 못했다. 그래서 ‘그’를 조사하면서 다른 조직원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공분(公憤)을 느끼고 있었는데, ‘그’가 나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다.

‘그’는 나에게 “이 사건으로 구속될 무렵 아내가 딸을 출산했는데 아직까지 딸의 이름을 정하지 못했습니다. 아내와 함께 딸의 이름으로 세 개를 생각해 보았는데, 도저히 결정을 할 수가 없으니 그 중의 이름 하나를 추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말을 하였다.

그 말을 듣고 한참을 망설이고 있었는데, 계속 ‘그’가 부탁을 하였고 또 그 부탁이 무리한 것도 아니어서 그 이름 세 개를 일일이 소리 내어 불러보다가 예쁘다고 생각하는 이름 하나를 추천해 주었다. 그러자 ‘그’는 매우 고마워하면서 인사를 하고 돌아갔다.

몇 개월 뒤 필자는 교도소에 있던 ‘그’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자신의 간곡한 부탁을 들어주어서 매우 고맙다는 취지였다. 또 필자가 추천해준 이름으로 딸의 이름을 정했다는 ‘그’의 편지를 읽고 사소한 부탁을 들어준 것을 그렇게까지 고마워하는 것을 보면서 신선한 충격과 감동도 동시에 받았다.

이는 마치 필자가 1998년에 개봉된 미국 영화 ‘위대한 유산’의 주인공이 된 기분을 느끼게 하였다.

이 영화는 한 탈옥수가 우연히 만난 한 소년의 작은 도움을 받고 인간적으로 크게 감명을 받아 그 주인공이 성년이 되었을 때, 금전적으로 많은 후원을 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이 영화에서도 주인공은 그 탈옥수를 도와준 기억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가 성년이 되었을 때 그 탈옥수로부터 뜻밖의 후원을 받고 화가로서 크게 성공한다.

필자는 ‘그’로부터 위와 같은 편지를 받은 이후, 그 부탁이 부정한 청탁이 아닌 이상, 사소한 것이라도 일단 잘 살펴보자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혹시 그 부탁이 외관상 사소한 것일지라도 그 부탁을 하는 사람의 인생에는 많은 영향을 끼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즉, 검사는 사람의 삶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자리에 있는 만큼, 범죄혐의를 받고 있는 피의자에게도 마음을 열고 소통하며 인간적인 배려를 하여 범죄자의 교화·개선에 이바지할 필요도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안광현 광주지검 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