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는 동안 참 많은 기념일이 있다. 광복절 같은 국가적인 기념일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생일과 같은 개인적인 기념일도 있다. 그런데, 국가 기념일 중 상당수는 사실 우리 자신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어 우리가 챙겨야 하는 날이 아닌 경우이나, 필자가 보기에 거의 유일하다시피 국가의 공식적인 기념일이면서도 개인적인 기념일이 바로 어버이날이 아닌가 싶다.

사실 그 어느 누가 부모 없는 자신의 존재를 생각할 수 있을까?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우리에게 부모는 그 존재의 전제이다. 부모의 존재를 전제로 하여 나와 가족이 존재하고, 가족을 전제로 하여 사회가 존재하며, 사회를 전제로 하여 국가가 존재하니 그 모든 존재의 근원에 부모가 있는 셈이다.

할리우드 영화가 마치 자신의 ‘전매특허’처럼 그 밑바탕에 가족의 사랑을 주제로 하는 것이 다른 이유에서가 아닐 것이며, 특히 동양 유교사회의 도덕사상인 ‘삼강오륜’에 있어 그 시작을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에서부터 비롯하여 점점 넓혀가는 것 역시 다른 이유에서가 아닐 것이다. 이렇게 인간관계의 시작이자 가장 원초적이면서 일차적인 관계가 요즘도 아무런 문제없이 유지되고 있는 것일까. 필자가 법관 생활을 하면서 놀라웠던 경험이 부모자식간, 형제자매간 소송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 특징이 부유한 집안 만의 문제가 결코 아니라 우리 주변 보통의 가족들 사이에서 벌어진다는 것이며, 또한 여타 소송보다 그 갈등의 골이 지극히 심해 웬만해선 화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런 사건의 경우 대부분 조정절차를 진행하고 있으나, 결코 쉽게 조정이 성립되지 않는다. 그 옛날 홍길동은 사회적 제도 탓에 그렇게 소원하던 ‘호부호형’을 하지 못했는데, 현대에서는 ‘호부호형’을 스스로 거절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필자가 경험한 일인데, 일부 당사자들은 상대방을 그냥 원고나 피고로 부르며, 심지어는 아저씨, 아줌마로 부르는 경우까지 보았다. 그래도 여전히 원만한 화해가 성립하는 경우도 있으니, 이때에는 당사자들보다 필자가 오히려 다행이라는 안도의 숨을 쉬게 된다.

얼마 전 모 TV에서 ‘가족’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그 전개가 만남, 갈등, 화해, 이별, 추억의 소주제 형식으로 진행되었는데, 어느 한 부녀의 인터뷰가 인상적이었다. 아버지는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고, 그 딸은 인터뷰를 하면서 마지막 말로 ‘다시 태어난다면, 내가 부모로, 아빠가 자식으로 태어났으면 좋겠다. 그럼, 아빠처럼, 보살펴 줄 수 있으니까’라고.

지난주가 석가탄신일이었는데, 경전 중에 “부모은중경”이 있어, 그 내용 중 일부를 소개하고자 한다. “부모님의 크신 은덕 깊고도 중하여라. 크신 사랑 잠시라도 끊일 사이 없으시니, 앉으나 일어서나 그 마음이 따라가고, 멀든지 가깝든지 크신 뜻은 함께 있네. 어버이 나이 높아 일백 살이 되었어도, 여든 된 아들·딸을 쉼 없이 걱정하네. 이와 같은 크신 사랑 어느 때에 끊이실까, 수명이나 다하시면 그때에나 쉬실까.”

필자는 아직도 믿으며, 믿고 싶고, 또한 보고 싶다. 피는 여전히 물보다 진함을…

/이정재 광주지방법원 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