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가을 필자가 국선변호를 맡은 사건 중에 흥미로운 사건이 있었다. 아동복지법위반. 즉, 아동을 학대했다는 이유로 보육시설의 여교사 3명이 징역형을 선고받고 항소한 사건이었다.

아동학대라고 하면 영화나 뉴스에서 접하는 것처럼 보육시설의 운영자가 자신이 갖고 있는 권력을 이용하여 폭력 또는 성적학대를 하는 경우로 여겨져 왔기 때문에 피고인들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갖기 어려웠다.

하지만 막상 피고인들로부터 들어보니 사건의 성격은 생각과 달랐는데, 보육원의 책임자가 교사들과의 감정대립으로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결심한 후 교사들로부터도 아동학대를 이유로 사직서를 받아낸 것이 발단이었다. 이후 사직서를 냈던 교사들이 뒤늦게 해고의 부당성을 다투면서 민원을 제기하자, 교사들을 아동학대기관에 신고하여 사건화가 됐다.

실제 학대라고 할 정도로 심한 경우도 있었지만 항소한 피고인들의 경우 나름대로 억울해 보였다. 어떤 피고인은 아동학대라고 할 만한 행위가 없어 보였고, 다른 피고인은 그 정도가 심한 것은 사실이지만 보육원에서 자라서 처음으로 그 보육원의 선생님이 된 경우여서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각별했다.

나도 자녀를 키우는 사람으로서 ‘매를 아끼면 아이를 망친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에 어느 정도 이해되는 면이 없지 않았다.

재판 진행은 여러모로 어려웠는데, 원심에서 피고인들이 공소사실을 자백하였을 뿐만 아니라 피해자들이 어린 아이라는 점 때문에 증언을 들을 수가 없었다. 또 보육원 관계자들이 피고인들에 대해 무조건적인 반감이 심했고, 심지어 변호인인 필자에게까지 적의를 드러내는 등 심적으로 많이 부담스러웠다.

‘아이들을 사랑으로 돌보고 있다’는 자긍심을 갖던 봉사자에서 오히려 아동학대의 범죄자로 전락한 피고인들은 명예회복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사회복지사로서의 생존을 위해서 재판 결과에 민감할 수 밖에 없었다.

필자는 사무실에서 재판을 준비하면서 피고인들이 결과에 낙담할까봐 ‘재판에 최선을 다한 후에 그 결과는 하나님의 뜻으로 돌리자’며 위로했다. 그러나 보육원측 증인들의 비협조로 피고인들이 아동학대로 고발 된 사정을 재판부에 제대로 알리기 쉽지 않았다.

그런데 하늘이 도우셨는지 재판 막바지에 보육원 측에서 피고인들의 강력한 처벌을 원하는 진정서를 재판부에 제출하였고, 그 진정서에 피고인들을 고발하게 된 상세한 경위가 적혀 있어 오히려 피고인들에게 큰 도움이 됐다.

선고일이 되자 국선사건임에도 긴장되었다. 가담경위가 경미한 두 명의 피고인의 경우 무죄까지 선고되지 않을까 기대도 했는데, 결론은 벌금형이었고, 나머지 한 피고인도 감형되었다.

학교에서 ‘사랑의 매’가 사라졌다고 하는데 과연 그게 옳은 방향인지는 잘 모르겠다. 보육원이라면 어떤 형태로든 ‘사랑의 간섭’이 필요할 것이다. 우리는 서로 사랑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건을 마친 후 어느 틈엔가 내 마음속에는 작지만 소중한 희망이 생겼다. ‘보육원과 그 속의 아동들과 선생님들은 서로 사랑하고 사랑받기 위해 모였던 하나였고, 지금은 서로 자신이 옳다고 나뉘었지만 이들을 가로막는 막힌 담이 허물어져서 원래의 사랑이 회복되고 사랑이 필요한 아이들을 품을 수 있는 하나가 다시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윤춘주 광주지방변호사회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