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개봉한 할리우드 영화 중에 ‘이중 함정’(원제 The Star Chamber)이라는 법정영화가 있다. 특이하게도 판사가 주인공인 영화인데, 그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심증(心證)상 유죄임이 분명한 피고인을 물증(物證)이 부족하다는 이유만으로 무죄를 선고할 수밖에 없었던 사건 때문에 고뇌하던 주인공은, 어느 날 선배 판사로부터 ‘Star Chamber’라는 클럽에 가입할 것을 권유받게 된다.

그 클럽은 판사들로만 구성되어 있었는데, 심증상 유죄인데도 증거법칙상 부득이 무죄선고할 수밖에 없었던 사건들을 모아 다시 사적(私的) 재판을 하고 다수결에 의해 유·무죄를 결정한 다음 유죄로 결론이 날 경우 ‘킬러’를 고용하여 해당 피고인을 살해하는 조직이었다.

주인공은 고민 끝에 그 클럽에 가입하게 되고 자신이 무죄 선고를 하였던 살인 사건 하나를 클럽 테이블에 제출하게 되었다. 토론 끝에 만장일치로 유죄로 결론이 났고 클럽은 킬러를 고용하여 그 피고인을 살해하도록 지시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그 피고인은 실제로 무고한 사람이었음이 뒤늦게 확인되었고, 이를 알게 된 주인공은 그 킬러를 쫓아가 혈투 끝에 무고한 희생을 막아내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최근 흉악범죄가 늘어나고 있다. 입에 담기에도 힘들 만큼 참혹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태연한 언행을 일삼는 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 부아가 치밀어 오를 때가 있다. 하루빨리 재판이 진행되어 법의 엄중한 심판이 내려졌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헤아리며 말이다.

그런데 그러한 자들을 바라보는 법정 바깥의 시선은 더욱 분노에 차 있는 것 같다. 뭐 하러 저런 인간 이하의 행위를 한 자들에게 ‘무죄추정의 원칙’이니, ‘재판받을 권리’니 하며 인권 타령을 한다는 말인가. 아니, 무엇 때문에 저렇게 인간 같지 않은 자들을 위해 시간과 비용을 들여가며 한가롭게 재판이라는 것을 하는 것인가 하고 말이다.

‘인간 이하의 행위를 한 자들에게는 인간 이하의 대접을 해 주어야 한다’는 보응의 감정은 법 없이도 살아가는 대다수 일반인의 입장에서 보면 어쩌면 정상적인 정서일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러한 정서적 비난 가능성은 그자가 그 짓을 하였다는 사실을 대전제로 하고 있는데, 과연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아직 확정할 수 없다는 점에 있다. 천에 하나, 만에 하나 비난받고 있는 그 사람이 진짜 범인이 아니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수사기관의 수사가 언제나 완벽하다고 전제할 수 없는 이상, 한 사람의 인생을 단죄하려면 더욱 신중한 진실 확인 작업이 필요하다. ‘무죄추정의 원칙’과 ‘재판받을 권리’는 무고한 한 사람의 억울한 처벌을 방지하고자 하는 우리 국가공동체의 규범적 결단인 것이다.

‘인혁당 사건’이나 ‘5월의 광주’ 등 억울한 사법피해의 역사가 그리 오래 전의 일이 아님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영화 ‘이중함정’의 이야기처럼 억울한 제2의 피해를 막기 위해 혈투를 벌이는 마음으로 헌법적 가치에 주목하였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으로 어지러운 요즘이다. 우리 헌법이 천명한 ‘인간의 권리’에 대하여 보다 민감한 성찰이 있기를 고대해 본다.

/최종원 광주지방법원 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