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이 이렇게 어두워 어떻게!”

한 여성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휴게소 화장실에 울렸다. 뒤따라 들어오던 어린 여자아이가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며 여성의 팔을 잡아당겼다.

“엄마, 선글라스 끼고 어둡다고 하면 어떻게 해.”

웃을 수만은 없는 상황. 어두웠던 것은 화장실이 아니라 색안경을 낀 그녀의 세상이었다. 그렇다. 분노의 붉은 색안경을 쓰면 분노로 이글거리고 화가 치밀어 오르는 붉은 세상을, 슬픔의 파란 색안경을 쓰면 슬프고 우울한 세상을 만나게 된다. 의심의 노란 색안경을 통해선 주변 사람을 불신하기에 바쁜 마음이 되고, 절망의 검은 색안경을 통해선 희망 따윈 기대하지 않는 마음이 된다. 나는 지금 어떤 색안경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가.

요즈음 언론매체를 통해 만나는 세상의 이야기는 온통 위기와 불신의 색안경이 만들어낸 것만 같다. 해체 위기에 놓인 가정, 상상할 수 없는 차원의 폭력, 불신만 늘어가는 정권과 정책, 심지어 윤리성을 검증 받아야 하는 성직자들까지, 신문 속 사건을 접하노라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온통 문제투성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눈앞에 불신의 색안경이 씌워져 있다는 것을 우리 스스로 자각하지 못한다는 것에 있다.

‘스티그마(Stigma) 효과’라는 것이 있다. 타인에게 무시당하고 부정적인 낙관이 찍힌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나쁜 쪽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매일 접하는 불신의 세상사는 우리도 모르게 불신의 색안경을 쓰게 만든다. 신문을 통해 입력된 인간의 탐욕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 더 깜깜한 불신의 색안경이 우리의 눈에 씌어졌다. 그런가 하면 ‘피그말리온(Pygmalion) 효과’라는 것도 있다. 타인이 나를 존중해주고 기대하는 것이 있으면 사람은 좋은 쪽에서 변하려고 노력해 긍정적인 효과를 거둔다는 것이다.

도덕과 윤리, 법과 질서가 정연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문제점만 지적한다고 개선되는 것은 아니다. 단점만 지적하다 보면 그 사람과의 윤기가 끊어지고, 윤기가 끊어지면 그와의 인연이 끊어질 수 있다. 안 되는 것만 말하는 사회는 희망을 잃고 절망에 빠지기 쉬우며, 결국 사회의 관계망은 불신 속에서 더 깊은 타락의 길로 들어서고 말 것이다.

사회를 불신 속으로 밀어 넣은 주범 중 하나는 사회 지도층이다. 가장 기본적인 도덕성도 갖추지 못한 이들이 그 가운데 있어 사회의 축을 불신이란 경계로 흔들어 댄다. 그러니 사회의 지도방침이 속수무책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성인(聖人)의 말씀에 귀 기울여 본다. 원불교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지도인들이 준비해야 할 필수조건으로 “지식과 더불어 신용을 잃지 말 것”과 “개인적인 이익을 취하지 말 것”, 그리고 “아는 것과 행동이 일치해야 함”을 강조하셨다. 불신의 시대에 신뢰와 화합의 길을 밝혀주는 희망의 말이다.

지금 우리의 눈을 가리고 있는 불신의 색안경을 벗어버리고 신뢰를 바탕으로 장점과 긍정, 사랑과 은혜가 삶의 보편 가치임을 자각하게 되는 밝은 세상을 기대해 본다.

〈덕윤 원불교 광주교당 주임교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