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생 지영이(가명)가 친구 은주(가명)의 아버지를 강제추행 혐의로 고소하였다. 은주네 집에서 놀다 밤에 은주와 함께 잠을 잤는데, 은주 아버지가 와서 자신의 몸을 만졌다는 것이다. 경찰은 조사 후 기소 의견으로 송치하였다. 필자가 기록을 검토하는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 지영이가 “제가 벌떡 일어나자, 은주 아버지가 저를 만지는 것을 멈추고 은주 자리로 가더니 은주의 가슴을 손으로 막 주물렀어요.”라고 진술하였는데 이 부분에 대하여는 아무런 확인이 되어있지 않은 것이었다.

뭔가 냄새가 나는 것 같아 은주를 상대로 아버지로부터 추행이나 강간을 당한 사실이 있는지 확인해 보았다. 역시나 은주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혼한 초등학생 시절부터 아버지로부터 강간을 당해오고 있었다. 술만 마시면 자기를 때리는 아버지가 너무 무서워 차마 반항이나 거부를 할 생각조차 못하고 살아왔다고 했다.

즉시 은주 아버지를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위반(친족관계에 의한 강간) 혐의로 구속하였고 은주 아버지도 범행을 순순히 자백하여 사건 자체는 별다른 문제 없이 처리되었다.

그러나 형사 사건이 처리된 것과는 별개로 은주의 상처와 고통은 그대로 남아있었다. 은주는 강간이 죄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유일한 보호자인 아버지가 교도소에 들어갈 경우 자신과 동생의 생계가 곤란해질 것을 염려하여 아무에게도 아버지의 죄를 말하지 않고 차마 도움을 요청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참고 살아왔던 것이다. 어쩌다 지영이 사건이 터지고 누군가 먼저 물어봐 주자 그동안의 설움이 한꺼번에 북받쳐 올라 진실을 밝히기는 했지만, 막상 아버지가 구속되고 보니 생계 문제가 또 다른 두려움이 되어 몰아친 것 같았다.

필자는 소속 검찰청 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 은주에 대한 지원을 의뢰하였고 범죄피해자지원센터는 은주에게 생활비와 학비를 지원하였다. 은주는 강간으로부터 해방되었을 뿐만 아니라 생계걱정에서도 자유로워진 후에야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검찰이 피해자를 보호하는 제도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 몇 개를 꼽아보자면 다음과 같다. ① 각 청마다 피해자전담검사와 지원전담관을 두고 피해자지원실을 설치하여 각종 상담, 수사기관 및 법정동행을 통한 신변보호 등을 담당하고 있다. ② 각 검사실에서는 일정 사건을 형사조정절차에 회부하여 피해의 실질적 회복을 도모하고, 각종 통지를 시행하여 피해자의 수사 및 재판절차 참여권을 보장하고 있다. ③ 특별히 보호해주어야 할 필요가 있는 피해자에 대하여는 대검찰청이 마련한 피해자보호시설에서 일정기간 거주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④ 또한 은주 사건의 경우처럼 범죄피해자지원센터 등 관련 민간단체와의 협조를 통하여 생계비, 학자금, 취업알선 등의 경제적 지원을 하기도 하고, 기타 의료기관 연계 등의 의료지원, 배상명령제도 안내, 형사소송절차에서의 화해제도 안내, 법률구조공단 안내 등의 법률지원을 시행하기도 한다. ⑤ 각 검찰청에 범죄피해구조심의회를 설치하여 범죄로 인하여 사망하거나 중장해를 당하고도 가해자에게 자력이 없어 피해를 보상받지 못하는 피해자에게 구조금을 지원하고 있다. (관련법 개정으로 2010. 8. 15.부터는 ‘가해자 불명 또는 무자력’ 요건을 요하지 아니하고, 장해구조금 지급대상도 ‘장해 및 중상해’로 확대된다)

검사 생활이 힘들 때도 많고 회의가 들 때도 있지만, 그래도 E.디킨슨의 시처럼 “내가 만일 애타는 한 가슴을 달래줄 수 있다면, 내가 만일 한 피해자의 고통을 덜어주거나 괴로움을 달래주거나, 할딱거리는 작은 피해자를 도와서 보금자리로 되돌려 줄 수만 있다면” 나의 검사로서의 삶은 정녕 헛되지 않을 것이다.

/이승혜 광주지방검찰청 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