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가족의 권유로 성당을 나가게 되었다. 지금은 냉담자이지만, 그때 교리공부를 하면서 몇 구절 읽어 본 성경 구절을 기억해 보면, 대게 “주께서 말씀하시기를…”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하느님께서 말씀으로 이 세상 모든 것을 만드셨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얼마 전에 판사가 재판하면서 당사자에게 막말을 하였다는 보도가 있었다. 법원이 재판모습을 촬영하고 모니터링을 하는 등 법정 언행 개선을 위하여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는 터에 접한 보도라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언어는 독백이 아니고서는 다른 쪽에 전달되는 속성을 가지므로 사용된 언어가 적절한지 여부는 그 언어를 전달받는 쪽에서 바라보아 판단하게 된다. 그러니 법정에서 판사의 언어 사용의 잘잘못에 관한 시비에 대하여는 판사가 어떠한 반박을 하더라도 동조 받기는 어려울 것이다. 어쨌든 앞으로 신중한 언행이 구사될 것으로 믿자.

그런데 법정은 판사만이 말을 하는 공간은 아니다. 구술변론이 정착되면서 당사자가 말을 하게 되는 시간이 훨씬 길어졌다. 재판에서 당사자의 말은 판사와 상대방 당사자 양쪽으로 향하고 있다. 당사자가 한 말이 판사에게 가져다주는 의미와 상대방 당사자에게 가져다주는 의미는 다르다.

먼저, 당사자가 소위 ‘칼자루’를 쥐고 있는 판사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므로 이 점은 문제가 될 것이 없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당사자가 사건의 쟁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여 판사가 듣고자 하는 내용을 말하지 못하고, 쟁점과 무관한 내용을 장황하게 말하는 것이다.

판사는 당사자가 하여야 할 말은 다 듣지만, 하는 말을 다 들을 수는 없다. 오히려 판사는 당사자로 하여금 유의미한 말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옳고, 그런 의미에서 판사가 종종 당사자의 말을 끊는 경우가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다음으로 재판과정에서 당사자의 말은 상대방 당사자에게 직접적으로 상처를 주는 경우가 자주 있다. 탈무드에 나오는 이름난 학자인 요카난 랍비와 검투사인 레시 라키스의 이야기는 일상을 사는 우리에게 많은 깨달음을 준다.

처남·매부 사이인 두 사람은 아주 사소한 사항에 관하여 논쟁을 하다가 말다툼으로 번져 결국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두 사람 모두 패배를 보게 된 것이다.

이 이야기는 다툼을 하게 되더라도 공정한 방식을 따라야 하고, 논쟁 자체에 대한 의견이나 입장을 말하는 것에 그쳐야지 사적인 일들을 거론하며 상대방을 깎아내리려고 하여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준다.

유태교 율법학자인 죠셉 텔러슈킨이 쓴 어느 글에 의하면, 유태교의 가르침에 혀를 ‘칼’에 비유하지 않고 ‘화살’에 비유한 이유에 대하여 어느 랍비가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고 한다.

“누가 제 친구를 죽이려고 칼을 뽑았다가도 친구가 빌며 용서를 구하면, 화가 누그러져 칼을 도로 집어넣을 수 있다. 그러나 한 번 쏜 화살은 아무리 나중에 후회를 한다 해도 돌이킬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는 재판 당사자의 말과 글도 세련되어질 때가 되었다. 올 가을이면 우리나라에서 ‘2010 G20 정상회의’가 열린다.

/최창훈 광주고등법원 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