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신(神)은 공평하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예외없이 찾아온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듯이 생이 있으면 꼭 죽음이 있다. 구십이 넘는 긴 수명을 누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린 나이에 요절하는 사람도 있다. 왜 그럴까.

그것은 범인으로서는 알 수 없는 인생의 부조리며 그야말로 운명이다. 일찍이 희랍 사람들에 의하면 그것은 운명의 여신(女神)의 장난으로 생각했다.

운명의 여신 모이라(Moira)는 인간의 수명을 주관한다.

운명의 세 여신 중 하나인 클로토(Klotho)는 생명의 실을 짠다. 클로토는 ‘실을 짜는 자’라는 뜻이다. 클로토가 짠 생명의 실을 라케시스(Lachesis)가 마음대로 할당한다. 어떤 사람한테는 50년의 수명을 어떤 사람에게는 1년의 목숨을 정한다. 이처럼 생명을 길게 하고 짧게 하는 것은 라케시스의 마음에 달렸다. 그가 정한대로 아트로포스(Atropos)가 수명의 실을 가위로 잘라 버린다. 일단 자르고 나면 아무도 어떻게 할 수 없다. 아트로포스는 ‘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운명은 필연적이요 결정적이다.

운명의 여신 모이라는 ‘몫’이라는 뜻이요, 할당이라는 의미다. 우리는 각자의 수명을 저 운명의 여신한테서 할당을 받는다. 철학적 사색의 천재였던 희랍인들은 인간의 수명을 이렇게 생각했다. 인도나 중국 같은 동양인들의 죽음의 철학과는 정반대되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운명의 세 여신은 모두 뉴크스(Nyx)의 딸이다. 뉴크스는 희랍신화에 나오는 밤의 여신이다. 밤의 여신에게서 태어났다는 것은 매우 상징적이다.

인간의 운명은 알 수 없는 어둠에 쌓여있다는 뜻이다. 운명은 곧 부조리요 수수께끼다. 사람의 생명에 길고 짧음이 있다는 것은 불평등하지만 죽음의 신은 모든 인간에게 예외없이 찾아온다는 것은 지극히 공평하다.

죽음은 바람처럼 홀연히 찾아온다. 아무 예고도 없이 생명의 문을 검은 손으로 두드린다. 여기에 죽음의 무서움이 있다. 인간은 일순간 앞이 암흑이다. 이와 같이 죽음은 언제든지 무시로 찾아오기 때문에 우리는 죽음에 대한 준비와 각오가 필요하다. 언제 오더라도 태연자약하게 맞이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 것인가와 어떻게 죽을 것인가가 인생의 중요한 문제다.

“우리는 낳자마자 죽어가고 있으며 끝은 언제나 시작과 결부되어 있다.”

이것은 부처님의 제자 아난다의 말이다. 하루하루 우리는 죽음과 접근한다는 말이다. 또 인도의 시성 타고르는 “죽음은 생(生)의 종장이요, 삶의 오메가는 죽음이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죽음의 검은 손이 우리 생명의 문을 냉혹하게 두드릴 때 어지러운 꼴을 하지 않고 범연하게 나설만한 마음의 여유를 평소부터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혼자 죽어야 한다. 죽음은 나와 가장 깊은 실존적 관계를 갖는 생의 현상이다. 아무도 나를 대신해서 죽을 수는 없다. 죽음은 나 혼자 하고만 관계를 갖는다. 우리는 죽음에서 인간의 개체성이라는 엄연한 한계에 부딪힌다. 부처님도 하느님도 어찌할 수 없는 나 혼자만의 일이다. 나 밖에 관여할 수 없는 나의 실존적 상황이다.

/시몽 장성 백양사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