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무드에 술과 관련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노아가 포도나무를 심고 있을 때 악마가 찾아와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노아가 대답하기를 ‘이것은 포도나무인데 아주 달콤한 열매가 열리고, 익은 다음 그 즙을 마시면 매우 행복해지네’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악마는 자기도 거들게 해달라고 부탁하더니 양과 사자, 원숭이, 돼지를 끌고 와 그것들을 죽여 그 피를 거름으로 썼다.

그 결과 인간이 술을 마시면 처음에는 양같이 온순하다가 조금 더 마시면 사자처럼 사납게 되고, 더 많이 마시게 되면 원숭이처럼 춤추거나 노래 부르며, 나중에는 토하고 뒹굴고 하여 돼지처럼 추하게 된다는 것이다.

필자는 광주지방법원에서 구속영장이 청구된 피의자(범죄 혐의자)를 심문하여 그 구속 여부를 결정하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수사기관으로부터 구속이 필요하다는 1차 판단을 받은 사건이니 만큼 사안은 대체로 중하다. 그런데 법정에서 피의자들이 호소하는 변명을 듣고 있노라면 속된 말로 ‘술이 웬수’라는 생각이 든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실제로 최근 약 5개월 동안 구속영장이 청구된 사건 331건을 분석해 보니, 음주가 범죄의 직접적 원인이 되었거나 피의자의 범행의지를 강화하는데 기여한 것으로 보이는 사건의 비율이 26%(85건)나 되었다.

우선 음주 그 자체가 범죄와 직결되는 음주운전이 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09년 기준 음주 교통사고로 인한 사상자 수는 5만1696명, 음주운전 적발자는 32만7606명에 이른다고 한다.

그 중 사고로 중한 결과를 초래하거나 음주운전으로 3회 이상 적발된 경우 등이 영장 청구 대상이 된다. 본인으로서는 별로 취한 느낌이 들지 않아 운전대를 잡았겠지만, 실제로는 이미 ‘양의 단계’에 진입한 것을 착각하고 있었을 뿐이다.

다음으로 폭력사범이다. 영장심사 법정에 서는 폭력사범 중 약 절반가량이 술에 취한 채 범행을 저질렀다. 말하자면 ‘사자 단계’에서 사고를 친 셈인데, 곤란한 것은 이런 사람들은 술을 아무리 마셔도 좀처럼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않고 계속하여 ‘사자 단계’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또 다른 유형으로 공무집행방해 사범이 있다. 사실 이 경우는 거의 100% 술과 관련이 있는데, 상습적인 사람들은 취하기만 하면 죄 없는 경찰관 멱살을 잡고 옷을 벗기겠다며 허세를 부리거나(‘원숭이 단계’) 경찰서를 이리저리 휘저으며(‘돼지 단계’) 일상의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다음 날 인간세계로 돌아와 후회로 가슴을 치지만, 한 번 엎질러진 물이 담아질리 만무하다.

필자는 술은 인간이 만들어낸 최고의 발명품 중 하나이며(적어도 다섯 손가락 안에는 든다), 좀 거창하게 말하자면 술을 빼고는 인류 역사 자체를 이야기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팽팽한 긴장감 속에 진행한 재판을 모두 마친 다음 시원하게 들이키는 한 잔의 맥주는 그 어느 감로수에 비길 것이 아니다.

하지만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이 술처럼 잘 적용되는 경우가 또 있을까? 앞서 얘기한 구속영장 청구 사건의 26%가 술과 관련 있다는 말을 새겨보면 술을 잘 다스리기만 하면 중범죄의 26%를 막을 수 있다는 셈이 된다.

인생(人生)을 즐기기 위해 마시는 술인데, 그로 인해 축생(畜生) 취급을 받아서야 되겠는가. 스스로를 위해, 나아가 사회를 위해 절제된 음주습관을 길러 어디까지나 ‘인격’을 지킬 일이다.

<윤상도 광주지법 부장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