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한가위만 같아라.’는 말과 같이 만물이 풍성한 결실을 맺는 가을이다. 그 한복판에 놓인 추석연휴가 길게 있으니 의미만큼이나 시간적으로도 큰 연휴이다.

이젠 근대화·산업화라는 단어가 식상하게 들릴 만큼 세상은 더 많이 더 크게 변했고 그에 따라 명절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도 달라졌다. 양손에 올해의 첫 수확거리를 들고 버스에서 내리는 노부모가 익숙한 풍경이 되었지만 여전히 추석은 온 국민에게 있어 명절 중에서도 으뜸이다. 그 으뜸의 시간을 그저 몸 편하게, 눈 즐겁게, 입 바쁘게 보낼 것이 아니라 삶의 근본을 생각해보는 멋진 명절 연휴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삶의 근본이라…. 거창한 것이 아니라고 본다. 내가 살아가는 터전을 둘러보는 것에서부터 근본에 대한 생각은 시작된다.

추석은 친지·조상과 만나는 날인 동시에 인간과 자연이 만나는 날이기도 하다. 우리 문화에는 기제(忌祭)에 드리는 제사 말고도 명절날 제사를 드리는 풍습이 있다. 추석은 단순히 먹고 즐기는 축제가 아니라 생사(生死)가 둘이 아닌 이치를 되새겨 조상과 후손이 함께하는 차례의 문화이다. 차례 속엔 나와 나의 혈연만이 아닌 우리, 넓게는 자연-생명이 있는 모든 것과 ‘함께’ 하는 정신이 담겨 있는 것이다.

자연-생명 안에서 일어나는 ‘함께’의 축제는 추석만이 아니다. 우리의 전통 명절인 설, 대보름, 삼짇날, 단오, 칠석, 동지 모두가 자연-생명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만큼 우리 선조들은 예로부터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에 익숙했고 동시에 자연을 인간 세계에 끌어들임으로써 자연-생명과 동화해 가며 살아왔던 것이다.

원불교 교전에서 “자연은 우리 인간을 비롯해서 모든 만물을 생성 발전시키는 무한한 은혜의 보고(寶庫)”라고 하였다. 일월(日月)의 무한한 광명과, 물과 공기, 그리고 대지는 만물을 살리는 한없는 자원이다. 지루한 장마 속에서도 끈질기게 빛나던 햇살과 풍운우로상설의 위력이 지금 들판에 피어났다. 씨 뿌린 봄을, 알차게 여문 여름을 보내고 이제 들녘에 노란 물결의 결실이 우리 앞에 놓여 있으니 ‘함께’가 모여 만든 생명 앞에 우리의 마음이 절로 풍요해지지 않은가?

그러나 지금 우리는 어떠한가? 한 예로, 현대의 물질문명이 초래한 자연파괴는 이제 문명 속의 인간이 더 이상 맑은 물을 마실 수 없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겨주었다. 정부에서 안심시키는 수돗물도 믿지 못해 정수기 물에 매달려 살며 약수터에 가면서도 생수를 가지고 가야하는 현실이 되어버렸다. 시간이 흐를수록 개발과 발전의 논리는 인간으로 하여금 자연과 자꾸 멀어져가는 삶을 살아가게 한다.

아무리 써도 다함이 없는 우주의 삼대자원이라는 태양열과 공기와 물, 이중 한 가지만 오염되어도 인간은 살 수 없다. 없어서는 살 수 없는 관계, 이것이 은혜이니 이 고마운 은혜를 우리는 진정으로 느껴보는 명절의 끝자락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내 삶의 근본을 고민하고 감사하는 길이다.

/이덕윤 광주교당 주임 교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