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이면서 작가로서 그리고 언론인으로 유명했던 선우휘(1922-1986년) 선생의 학창시절 이야기다. 그가 살았던 시절에는 국가 전반에 걸친 가난 때문에 학교에 도시락을 가져오기도 어려웠다. 그런데 그의 한 친구는 도시락을 매번 싸들고 왔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친구의 도시락에는 긴 머리카락이 한두 개씩 꼭 들어 있었다. 그럴 때마다 그 친구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그 머리카락을 살며시 잡아 빼어 휴지통에 버리고는 즐겁게 점심을 먹었다.

밥도 사람이 하는지라 머리카락이 들어 갈 수 있다. 그러나 그 친구의 경우는 그 빈도가 너무 심해서 처음에는 그럴 수도 있으려니 생각했던 선우휘도 그로 인하여 점차 그 친구와 마음이 멀어지게 되었다. 친구 어머니의 무성의가 못마땅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친구의 자존심을 건드릴 수 없어서 차마 그와 같은 자기 마음을 그에게 말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친구가 자기 집으로 놀러 가자고 청했다. 선우휘는 마음이 썩 내키지는 않았으나 거절하기 어려워 그 친구의 집으로 함께 갔다. 집에 도착한 친구는 집에 들어서자 문 앞에서 큰 소리로 외쳤다.

“어머니 오늘은 제 친구 선우휘와 함께 왔어요.” 아들의 목소리를 들은 친구 어머니는 방문을 열고 나오셨다. “오. 네가 항상 말하던 친구 휘가 왔단 말이냐. 그래 이리 가까이 오너라 어디 얼굴 좀 만져보자.”

선우휘가 친구 어머니의 얼굴을 바라보니 내 곁으로 다가오면서 앞을 더듬고 계셨다. 늙으신 몸에 시력마저 떨어지셨는데 그래도 한걸음 한걸음 조심스럽게 옮기시며 나한테 다가오고 계신 것이다. 친구 어머니의 이 모습을 본 선우휘는 깜짝 놀랐다. 그리고는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경박한 생각을 했는지를 깨달았다. 그는 자신의 그와 같은 잘못된 생각에 대하여 몹시 후회했다. 앞도 잘못 보시는 분이 손을 더듬으며 싸 준 도시락인데 그 속에 머리카락이 아니라 돌이 들어 있은 들 어찌 알 수 있겠는가.

그는 그동안 친구 어머니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싸준 어머니의 정성과 또 친구의 의젓한 태도를 생각하면서 자신의 모자란 생각에 부끄러워 고개를 떨구었다. 그리고 그들 모자간의 깊은 사랑을 새삼 느꼈다. 그 후부터 선우휘는 사람에 대하여 어떤 판단과 결정을 내릴 때는 그 내면에 깃들여 있는 진실한 마음까지를 함께 파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 주변을 살펴 볼 때 저들과 같은 일들은 흔히 있는 일들이다. 그래서 이 짧은 이야기에 특별한 감동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현상만으로 쉽게 사람을 판단하고 평가하고 재단하는 우리들의 경박한 행동에 경종을 울려야 한다. 사람마다 눈에 보이는 것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 속에 숨어 있는 진실을 보는 안목을 길러야만 된다. 그럴 때 우리는 깊은 삶의 의미를 되찾을 것으로 확신한다. 우리들이 종교의 문을 두들기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보이는 것보다는 보이지 않는 내면의 진실에 눈을 밝혀내야만 한다.

내면의 생활을 활력 있게 하기 위해서는 쇠를 담금질하는 경우와 그 과정이 매우 흡사하다. 내적 인간도 되풀이해서 이따금 불 속에 던져지고 그리고 나서 망치로 급히 두드려서 단련해야만 한다. 이렇게 해서 사람은 점차적으로 잃었던 본래 자기 모습을 찾게 된다.

자기의 허물에 대해서는 관대하면서 남의 허물은 바늘구멍만큼도 용납하지 않는 세상의 인심이 세상 살아가는데 야박하기 이를 데 없다. 이 모두가 눈으로 보이지 않는 내면의 진실을 밝히지 못한 때문이다. 이 같은 과제는 우리 인생이 끝까지 끌어안고 해결해야 할 어쩌면 숙명 같은 것이다.

/시몽 장성 백양사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