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외국으로부터의 침략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많은 문화재가 약탈당한 아픈 역사가 있다. 조선조 말 고종 임금은 일본인들이 보여준 청자를 보고 “그것이 어느 나라 도자기인가”라고 물었을 정도라고 보면 그때에도 문화재라는 개념조차 없었던 것 같다.

우리에게 문화재에 대한 인식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결국 바람 앞에 등불 신세인 대한제국의 운명과 함께 많은 문화재도 수탈당할 수밖에 없었다. 해방이 되고 1962년 ‘문화재의 보존 관리 및 활용에 관한 문화재보호법’이 제정되어 문화재 관리를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가 마련된 것을 보면 비로소 40여 년의 역사가 우리들 문화재 보존의식의 깊이가 된 것이다.

익산이 고향인 나의 어린 시절, 소풍장소는 으레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미륵사지석탑과 왕궁리 5층 석탑이었다. 백제시대 최대의 절터에 남아있는 미륵사지석탑은 국보 제11호이며, 마한시대 도읍지인 왕궁의 5층석탑은 국보 제289호이다.

지금은 언감생심이지만 당시 우리가 찾아간 곳은 지금처럼 문화재로서의 위용을 갖추지 못한 그저 편안한 소풍장소였다. 보물찾기에 좋은 친근한 장소로 천진난만하게 맘껏 뛰어 놀고 기어올랐던 그곳이 우리에게는 문화재인지, 왜 저렇게 한쪽은 허물어진 허술한 모습으로 방치되어 있는지, 선생님의 주의사항이 무슨 의미인지도 몰랐었다. 가치를 모르니 봐도 볼 줄을 몰랐고 들어도 들을 줄 몰랐음이다. 생각하면 할수록 문화재 훼손에 일조를 했다는 생각을 지워버릴 수가 없다.

하지만 나이를 먹어 고향의 문화재 소식을 접할 때의 나의 관심은 남다르다. 나와 상생의 관계를 알고 바라보는 문화재는 스스로 자긍심을 고취시키며, 지역적 공감대와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어떻게 이바지해야 할지 관심과 행동을 유발시키기도 한다. 사실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의 긍정적 반영은 지역공동체를 활성화하는데 중요한 원동력이 될 수 있는 것이다.

10월은 여행하기 좋은 계절이다.

사실 우리의 주위는 그 가치를 두고 바라보면 끝없는 유형무형 문화재와 천연기념물의 보고이다. 우리 문화재를 접하여도 특별히 관심이 없다면 그 존재는 무의미한 것이며, 역으로 그 의미를 알고 만나는 것은 비록 짧을지라도 영혼의 울림을 줄 것이다.

전 문화재청장이었던 유홍준 교수는 평소에 누군가로부터 어떻게 하면 우리 미술과 문화재에 눈을 뜰 수 있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지체 없이 “좋은 미술품을 좋은 선생과 함께 감상하며 그 선생의 눈을 빌려 내 눈을 여는 길”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아직도 문화재를 보는 우리 국민의 상황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원불교의 대산종사는 “유구한 민족의 전통적 슬기와 참됨을 바탕하여 세계적 정신운동을 이 땅위에서 달성할 것”을 말씀하셨다.

그런 의미에서 이 가을에 문화유산을 향해 떠나는 여행길목에서 많은 분들이 앞서간 선조의 숨결과 만나기를 기도한다. 그리고 그 만남은 우리들의 새로운 미래를 비춰주기를 바란다. 우리가 걷게 될 ‘오래된 미래’는 아는 만큼 우리 몫으로 다가오리라 생각한다.

/이덕윤 원불교 광주교당 주임교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