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얼마 전 고등학교 동문회에 나갔다가, 오랜만에 만난 친구로부터 그의 지인이 수사과정에서 구속이 되는 바람에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고 기소된 후 재판을 준비하는데도 어려움이 많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헌법과 형사소송법을 보면 ‘형사 피고인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무죄로 추정한다’고 규정되어 있는데, 왜 수사와 재판 단계에서 형벌에 해당하는 구속까지 하려는지 모르겠다는 질문을 하였다.

국내 학자들은 대부분 불구속 수사의 원칙 및 수사기관의 체포·구속에 대한 제한 근거로 무죄추정의 원칙을 들고 있다.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피의자에 대한 체포·구속의 입증 수준이 유죄판결을 받을 정도까지 요하는 것이라고 하거나, 체포·구속을 형벌로 취급하면서 유죄의 확정판결을 받을 때까지 무죄로 추정되는 피의자나 피고인을 체포·구속함으로써 형사처벌을 가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하기도 한다.

국내 학자들은 그동안 권위주의적 정권을 거치면서 피의자의 인권보장이 상대적으로 경시된 것에 대한 반성적 고려로 피의자의 보호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무죄추정의 원칙까지 체포·구속을 제한하는 원리로 확대 해석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체포·구속이 형벌과 같은 것이라면 그 형이 확정될 때까지 집행할 수 없으므로 그때까지 예외없이 체포·구속이 불가능하나, 형사소송법상 수사와 재판 단계에서도 체포·구속이 가능하다고 규정되어 있고 대법원도 피의자나 피고인이라도 구속의 사유가 있으면 구속하여 신체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으며, 이것은 무죄추정의 원칙에 반하는 것이 아니라고 판시하고 있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무죄추정은 단지 재판단계에서 입증책임을 정하는 절차적 원칙에 불과하고 재판 전 구금은 형사처벌이 아니라 관리에 해당한다고 하며, 피의자의 자유를 보호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지만 사회의 필요가 충분히 이를 능가하는 경우에는 피의자의 자유도 제한될 수 있다고 판시하고 있다.

따라서 무죄추정의 원칙은 체포·구속과 차원을 달리하는 것으로서, 체포·구속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재판단계에서 유죄의 입증책임이 검찰 측에 있다는 것을 정한 원칙이라는 것이다.

친구의 지인은 형사소송법상 구속의 사유에 해당되어 구속되었을 뿐이고 구속되었다고 해도 형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되며 그에 대한 유죄의 입증책임은 검찰 측에 있다는 것이다.

다만 검찰은 체포·구속이 공익을 위해 피의자나 피고인의 신체자유를 제한하는 최소한의 장치이며, 선량한 시민을 범죄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헌법과 형사소송법이 허용한 불가피한 수단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최근 구속영장재청구, 구속취소, 기소여부 결정에 시민의 참여를 보장하는 ‘검찰시민위원회’를 발족하고 시민들로 하여금 검사의 중요결정을 심사하게 하는 등 지금까지 체포·구속에 신중에 신중을 기해왔고 앞으로도 더욱 노력할 것이라는 다짐을 밝혀둔다.

동문회에서 소주를 기울이며 친구에게 한 즉답이 부끄러워 문헌 등을 참조하여 이 자리를 빌렸는데 어느 정도 대답이 되었는지 걱정이 앞선다.

/이영창 광주지방검찰청 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