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비밀이란 없다”라고 말한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은 “비밀이 없는 사람은 껍데기 인생이다”라고 외쳐댄다.

이럴 때면 나는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지 헷갈린다. 한쪽에서는 세상에 비밀이란 있을 수 없다고 말하고 한 편에서는 비밀이 없는 사람은 공허한 껍데기 같은 생활밖에 못한다고 하니 참말로 분별하기 어려운 일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 두 가지 말이 같은 의미의 말 같기도 하다. 세상에 비밀이 없다는 것은 인간의 행동을 말하는 것이고 비밀이 없는 사람은 공허한 삶이란 말은 인간의 마음을 두고 말한 것 같다.

전자의 일이란 우리들 주변을 잠시만 둘러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자세한 설명을 생략하고자 한다. 후자의 경우에는 인간이 마음속에 비밀을 간직하지 않고 있으면 쓸쓸한 사막을 걷는 것처럼 고독하고 공허해서 세상 살맛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이다.

가령 자기 혼자만이 어떤 사람을 사모하여 은애(隱愛)하면서 그윽한 연정에 빠져있다거나 한 번도 입밖에 고백해 보지 않은 자기 혼자만의 비밀을 마음속 깊숙이 간직하고 있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흥미롭고 보람된 일 같기도 하다.

마음에 비밀을 가진다는 것 마음속에 비밀을 갖지 않으면 못 견딘다는 사람. 생각해 보면 로맨티스트의 푸념 같기도 하지만 어느 면으로는 하나의 진리 같다고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본다. 이것은 내가 청소년기 호기심 많을 때의 일인데 그 마음이 이제 지천명(知天命)을 훌쩍 넘길 때까지 변하지 않은 것을 보면 나는 아직까지 청소년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철부지처럼 느껴진다. 만일 인간의 마음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는 거울이 있다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거울은 검은 것이 오면 검을 것을 비추고 흰 것이 오면 흰 것을 비춘다. 저와 같이 비추기만 하면 어떤 물체든지 환하게 비추듯이 인간의 마음을 비춰 보는 거울이 있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옆 책상에 같이 앉아 있는 남녀 사무원들끼리 그 거울을 비춰 보고 그들이 생각하고 있는 마음들을 면경알처럼 들여다볼 수 있다면 과연 어떻게 될 것이며 세상은 어떻게 변할 것인가.

참으로 세상이란 무미건조(無味乾燥)하여 살맛이 없어질 것은 물론 갈등과 투쟁은 한층 더 격렬해질 것이다.

그것은 왜냐하면 인간이 마음속에 지니고 있는 즐겁고 슬프고 사랑하고 미워하는 감정이 노골적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그로 인한 감정의 격돌만 더할 것은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기 때문에 인간이 간직한 마음의 비밀은 영원히 비밀인채 곱게 싸서 감추어 두는데 그 의의가 있을 것이다.

세상에는 자기를 까뒤집어 놓는 개방적 성격의 소유자들이 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일수록 세상의 보화처럼 몇 개 안 되는 마음의 비밀만은 껍데기 속에 든 소라처럼 깊숙이 감춰 두는 예를 우리는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마음의 비밀은 우리 인간의 허전한 마음을 메워 주는 청량제 같은 것이란 말인가.

고독하고 쓸쓸할 때 공허감이 온몸을 엄습해 올 때 조용히 마음의 비밀을 풀어 헤쳐 놓고 정답게 어루만지고 손질하고는 다시 혼자만이 간직한 비밀 창고에 감추어 둔다면 그것만으로 위안이 되기에 충분하다. 오히려 비밀이 가려지는 인간 심성에 무게를 더해주는 깊숙하고 그윽하고 은밀한 깊은 곳을 마련해 주는 미덕을 가져오는 것 같다.

인생행로에 있어서 누구나 그림자처럼 따르는 마음의 비밀을 우리는 깨끗하게 간직하도록 애를 쓴다면 아름다운 인생을 살아가는 방편이 아닐까.

/시몽 장성 백양사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