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문질병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치질만을 생각한다. 그러나 치질만큼 흔하게 발생하지만 치질보다 훨씬 심각하고 치료가 어려운 항문질환이 있다는 것은 잘 모르고 있다. 그것은 바로 항문 주변에 샛길이 뚫리고 구멍이 생기는 치루라는 질병이다.

항문 내에는 미끈미끈한 점액을 만들어 내는 분비선이 6∼10개 정도 항문내벽을 빙둘러 위치하고 있다. 여러 이유로 이곳에 세균이 침범하게 되면 고름이 형성되고 이를 항문주위 농양이라고 한다.

이렇게 발생된 농양은 고름의 양이 점점 많아짐에 따라서 약한 곳을 뚫고 주위로 퍼지게 되고, 항문주변이 빨갛게 발적되어 심한 통증과 고열이 발생한다. 간혹 농양은 피부까지 뚫고 나와 고름은 자연스럽게 배출되어 증상의 완화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 경우에 농양은 재발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농양의 원인이 되었던 감염된 분비선으로 세균침투가 반복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결국 항문주위 농양의 악화와 완화가 반복되면 그곳에 염증성 조직으로 형성된 섬유성 관, 즉 샛길이 형성되게 되는데 이것을 치루라고 한다.

항문주위 농양이 발생하면 더 이상 고름이 커지지 않도록 농양을 절개하고 배출시키는 수술을 일차적으로 시행한다. 이후, 3주가 지나 치루의 형태를 띄게 되면, 근본적인 원인인 감염된 항문선을 절제해야 농양의 재발을 막을 수 있다. 그러나 일부 환자의 경우에는 항문주위 농양을 절개 배농한 후 치루가 자연스럽게 소실되기도 하는데, 수술 후 3주 뒤 진찰시에 치루가 만져지지 않고 초음파 검사에서도 명확하지 않다면 추가적인 수술은 하지 않는다.

농양과 치루는 질병의 진행 정도에 따라 항문을 조이는 근육인 괄약근을 깊게 침범하게 된다. 수년 전까지도 다발성이나 깊이 침투한 난치성 치루의 경우 수술 후 배변을 참지 못하는 변실금이 매우 흔히 발생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항문 괄약근을 보존하는 수술법이 개발돼 난치성 치루에서도 괄약근 손상을 최소화할 수 있게 된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그러므로 치루 수술은 형태에 따라 수술방법도 달리해 괄약근의 손상을 최소화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는 많은 경험과 숙련된 기술이 필요하다.

치루는 오래 방치하는 경우 괄약근을 더 넓게 침범하거나 여러 개의 치루가 발생하게 돼 수술이 어렵고, 괄약근 손상도 피할 수 없게 된다. 더 시간이 지나면 변보기가 매우 힘들 정도로 항문의 협착이 일어나며, 치루 자체에서 암의 발생 가능성도 높아지게 된다. 결국 오래 방치된 심한 치루의 경우에는 항문 보존과 치루 수술 어느쪽도 쉽게 선택할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치루는 수술의 방법뿐만 아니라 수술의 시기 또한 매우 중요한 질병이다. 치료가 늦어버린 환자는 매우 심한 변비와 배변을 참지 못하는 변실금,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다.

치질은 아무리 심하다고 해도 대장 항문 전문병원이라면 거의 괄약근의 손상을 입히지 않고 수술을 할 수가 있다. 그러나, 치루는 아무리 경미한 상태일지라도 치료를 위해서는 괄약근을 절개 할 수 밖에 없다. 치루는 진단시에 수술을 오래도록 미루는 것이 지혜로운 것이 아니다. 치루는 괄약근의 손상을 최소화해 수술하는 방법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수술의 시기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윤승신 목포항도외과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