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화요일이면 필자는 광주지방법원 401호 법정에서 ‘데이트’를 한다. ‘데이트’ 장소인 401호 법정은 면적이 204㎡(61.7평)나 되고, 방청석 수가 135석이나 되는 광주지법에서 가장 큰 법정이다.

그곳에서 필자는 올 한 해 동안 수 천명의 민사사건 당사자들과 ‘데이트’를 했다. 매주 한 번 있는 ‘데이트’에서 당사자들을 만나기 위해 필자는 나머지 시간 동안 당사자들이 제출한 서면에 있는 주장과 증거를 검토하면서 당사자의 주장은 무엇이고, 주장에 부합하는 증거는 있는지?, 어떻게 하면 당사자를 만족시킬 수 있을지? 등등 갖가지 고민과 상상을 하면서 준비를 한다. 그리고 법정에 들어가기 직전에는 문 앞에서 잠시 멈춰 심호흡을 한 번 하고, 광화문에 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처럼 위엄있게 법정 문 앞에 서 있는 태극기를 응시하면서 “오늘도 온화하면서도 지혜롭고 현명한 재판진행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라”는 기도를 하면서 법정에 들어선다.

필자가 올해 401호 법정에서 만난 당사자들은 청구액이 2000만 원 이하인 민사소액 사건의 당사자들이다. 소액사건 재판을 진행하다 보면 아쉬움을 느낄 때가 있다.

먼저, 민사소액 사건은 대게 당사자들이 법률전문가의 도움없이 직접 소송을 수행하다 보니 당사자의 소송수행 능력의 부족으로 인하여 주장이 정리가 되지 않거나 원활한 재판진행이 되지 않는 경우가 간혹 있다.

재판의 지연이야 감수한다고 하더라도 승소가능성이 있음에도 소송수행 능력의 부족으로 인하여 패소하게 된다면 사법에 대한 신뢰 측면에서 커다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하여 변론주의가 적용되는 민사사건에서 당사자가 주장하지도 아니한 사실을 판사가 임의로 판결의 기초로 삼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에 대한 해결책으로 광주지법에서는 경제적 능력이 부족하여 변호사를 선임하지 못한 당사자에게 당사자의 신청이나 재판부의 직권으로 변호사비용을 국고에서 부담하는 ‘소송구조 제도’를 활용하고 있다.

다음으로, 많은 당사자들이 개인 간에 거래를 하면서 아무런 증거 없이 거래를 하다가 다툼이 발생한 뒤에야 법원을 찾는다는 점이다.

예컨대, 피고에게 돈을 빌려주었다가 돌려받지 못하였다고 대여금 청구를 하면서도 거래 당시에는 서로 좋게 지내는 사이여서 차용증을 받지 아니하여 증거는 없으나, 지금껏 인생을 정직하게 살아온 자신의 말을 믿고 승소판결을 해달라는 당사자들을 보게 된다. 재판장으로서 간혹 당사자들의 관계나 태도 등에 비추어 심증으로는 증거를 제출하지 못하는 당사자의 주장이 맞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어쩔 수 없이 패소판결을 해야 할 경우가 생길 때면 안타까움이 든다.

필자는 그러한 경우 가급적 당사자들에게 조금씩 양보하여 원만하게 합의를 하도록 조정을 시도하곤 하는데, 필자의 경험으로는 대게 돈을 줄 의무가 있는 사람들은 판결을 선고하면 자신이 승소할 줄 알면서도 양심이나 상대방과의 관계 등을 고려하여 조정에 응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데이트’를 마치고 401호 법정을 나설 때마다 필자가 법정에 들어섰을 때 방청석을 가득 메운 채 필자를 뚫어져라 바라보던 당사자들이 떠난 텅 빈 방청석을 보면서 “오늘도 얼마나 많은 당사자들이 나의 재판결과에 만족했을까?”, “혹시 나의 재판진행에 불만을 가지진 않았을까?” 하는 두려움과 함께 “다음 ‘데이트’는 더 멋진 ‘데이트’가 되도록 노력해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조현호 광주지방법원 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