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맘때는 앙상한 가지뿐이지만 7월부터 9월까지 꽃으로 뒤덮이는 나무가 배롱나무이다. 배롱나무는 속칭 ‘백일홍’이라고도 하는데, 수피가 아주 매끄러워서 ‘미끄럼 나무’라고도 하고, 둥치를 만지작거리면 잔가지가 간지럼을 탄다고 해서 ‘간지럼 나무’라고도 한다.

배롱나무는 마니아층이 두텁고 그러한 탓에 대단히 고가에 거래되는 수목이다.

배롱나무의 시세는 땅바닥 근처의 나무 직경이 20㎝이면 그 모양새에 따라 100만∼200만 원에 이른다. 거기에 직경이 5㎝씩 늘어날 때마다 값은 거의 두 배로 평가받는데, 예를 들어 직경이 40㎝ 정도라면 대략 1000만 원에서 3000만 원에 이를 수도 있다. 또 직경이 60㎝에 육박하면 군단위 지역에서는 몇 그루 찾기 어려운 것으로, 값으로 치면 그 모양새에 따라 3000만 원에서 1억을 훨씬 넘어설 수도 있다.

필자는 최근 배롱나무를 비롯해 금목서, 은목서, 동백나무, 마가목 등등 어떤 나무를 얼마나 심을까하는 궁리에 빠져 살면서 법정에 나가는 것에 당최 흥미가 없었다.

최근에 대법원 판례가 어떻다 하는 것보다는 유명한 ‘샤넬 No.5’라는 향수의 원료가 금목서라는 이야기가 귀에 더 솔깃했던 것이다.

그것도 부족한지 필자는 최근 근무지인 함평군의 약 100여 개 농가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어떤 나무를 심어야 하고, 나무 모양은 어떻게 가꾸어야 한다는 이야기만 잔뜩 늘어놓고 다녔다.

또 함평군청을 찾아가서는 ‘함평군의 소득작목으로 조경수를 식재해야하는데 묘목재배시설과 묘목구입비용을 농가들에게 지원해달라’고 졸라댔다.

군수님을 찾아가서는 우리 농가들에게 매년 5억 정도만 보조를 해주면 3년 내지 5년 후에는 그 어떤 농사보다도 비교할 수 없는 소득을 이끌어내겠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졸라댔다.

그런 필자의 진심을 알아주었는지 많은 호응이 있어 약 100여 농가를 중심으로 조경수생산자모임을 만들었고, 군에서도 요청한 것 이상의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게 되었다. 모임의 이름도 궁리 끝에 ‘나무와 사람들’이라고 붙였다. 또 누가 변호사 아니라고 할까봐 그 ‘멋진 이름’을 거금을 들여 상표등록까지 해두었다.

어느 날 소송을 해서 돈도 벌 수 있고, 좋아하는 나무도 볼 수 있는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다.

함평군 월야면 어느 마을에 앞집과 뒷집 사이에 대나무 밭이 있는데, 그 경계가 애매하다 싶은 곳에 직경이 50∼60㎝나 되는 배롱나무의 소유권 귀속을 두고 소송이 벌어지게 되었고, 필자는 피고측 대리인을 맡게 된 것이다. 모양새도 그 정도면 멋진 편이고 둥치도 울룩불룩한 게 폼나게 자리 잡은데다 그렇게 큰 나무가 상처나 썩은 곳이 없는 것이 정말 좋은 나무이다.

소장의 청구취지에는 배롱나무가 한 글자도 안 들어 있고 다만 그 배롱나무가 서 있는 언저리 10여 평에 관하여 취득시효만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기실은 ‘배롱나무를 원고의 것으로 인정해달라’는 것이지 땅에는 별로 관심도 없는 듯하다.

워낙 시골 동네라서 열평 정도 되는 땅값이라고 해봐야 고작 30만 원이나 할까 싶다. 그러나 그 작은 땅에 서있는 배롱나무는 아무리 못해도 2000만 원은 넘을 것 같고, 임자를 만나면 1억 원도 넘게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귀한 만큼 다툼도 많은 나무가 바로 배롱나무인 것 같다.

/전세정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