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일생을 마치고 갈 때 각양각색의 의식과 더불어 마무리도 다양하지만 요즘은 화장도 많이 하는 편이다. 교역에 임하고 있는 나와 같은 사람은 보통 사람들보다 장례식에 참예할 기회가 많아서 이곳저곳 화장터에 가게 된다.

어느 날 서울의 백제화장터에서 의식을 하게 되었는데 곡하는 소리, 찬송가 소리, 징소리와 목탁 소리, 종소리 등 각 화구(火口) 앞에서 각 종단의 의식들이 진행됐다. 수적으로 열세인 나의 의식은 소리에 묻혀서 진행되었다. 내가 모신 영가께서 혼잡하고 큰 소리에 눌려서 나의 잔잔한 기원의 소리를 듣기나 하셨을까 매우 송구스러웠다.

마치고 나오면서 맑은 하늘을 우러러 보았다. 허공에 우뚝 솟은 하나의 굴뚝에서 연기가 푸른 하늘에 아무런 다툼의 소리도 없이 평화롭게 피어올라 그리도 급히 푸른 하늘에 동화되어 허공에 흔적 없이 자취를 감춰버렸다. 찾을 길이 없어 멍하게 서있노라니 빨리 오라고 야단들이었다. 화들짝 놀라 걸음을 재촉해 차에 올라 창가를 바라보며 하염없는 생각에 잠기니 다음과 같은 것들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같은 열도(熱度)의 화구 앞에서 성스럽고 거룩한 각 종단의 종교의식을 거행하였으나 그들은 거의 차별 없이 한줌의 재와 연기로 화현했다. 이는 무위이화(無爲而化)의 자존자율(自存自律) 원리 따라 불변하는 진리를 평등하게 보여 주고 있었다. 그러나 사악한 인간들은 성령의 이름을 자의적으로 빌어서 천당, 지옥, 극락, 사탄 등 배타적으로 편을 갈라 진리는 항상 자기편이라며 요란스럽게 판을 친다. 그렇지만 화구는 같은 열기로 특정종교인에 연연하지 않고 누구라도 공정하게 한 줌의 재와 연기로 변화시키듯이 진리의 뜻에 부응하는 성령도 지공무사(至公無私)하고 원만구족(圓滿具足)하기에 아무리 교리로 무장하고 장엄한 집회장소가 있을지라도 변화의 진리에 적응치 못하면 불편부당한 독점의 굿판은 허용치 않는 것이 평등과 공정의 진리다.

그리고 각각의 화구 앞자락에서 각 종단의 교역자들이 성스러운 의식을 진행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는 한데 어울려 평화롭기 그지없는 한 조각의 구름으로 잠시 있다가 흔적없이 사라진다. 현상적인 실재도 저렇게 감쪽같이 자취를 감춰서 알 길이 없으니 독점이란 언감생심(焉敢生心)일 뿐이다. 감히 성령, 영성, 심령, 진리 등을 배타적으로 독점하겠다는 꿈은 어리석은 탐욕에 불과하다. 겸허히 자신의 그릇이 담을 수 있도록 비어 있는지, 울을 터서 경계를 얼마나 헐었는지 살피고 성자의 성령이 임하도록 지극정성으로 기도해야한다.

어느 종단이든 초창기엔 체계적인 교리도 거대한 집회 거처도 거창한 조직과 성직계급 등이 없었으므로 안과 밖이 따로 있을 수 없어 구원이나 성령이 내부에만 있다고 믿지 않았다. 이 때문에 울타리도 없었다. 하지만 요즘은 울타리를 견고히 해놓고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야 구원받는다며 어떻든 안으로 끌어넣으려는 배타적인 전도의 후유증이 심각하다.

내 종교를 사랑하고 신앙하듯 타인의 종교도 내 종교처럼 섬기는 것이 상생의 평화이며 생활 속의 진리로 성령이 임한 산 증거임을 명심하자.

/김주영 원불교 장성교당 교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