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겨울은 무척이나 춥습니다. 소록도에는 겨울에 눈이 와도 살짝 지표면만 쌓였다가 햇볕이 나면 금방 녹아 언제 눈이 왔나 한다는데, 올 겨울은 그런 말이 사실일까 싶을 정도로 눈도 많고, 날씨도 연일 춥습니다.

저는 소록도에서 사목하고 있는 신부입니다. 원고 청탁을 받고 ‘내가 어떻게? 무슨 자격으로?’하는 생각 때문에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그냥 담담히 사는 이야기 나누어보고자 해보겠노라고 답을 드렸습니다.

부임한지 얼마 되지 않지만 소록도 가족들 이야기부터 나누어 드립니다. 소록도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아 검문소 옆에 자리하고 있는 매점에 들른 적이 있습니다. 소록도에 와 보신 분들은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다리 건너 소록도로 들어오시면 검문소가 나오는데, 검문소를 막 지나면 한하운 시인의 시(詩) 제목에서 따온 ‘보리피리 매점’이 있습니다. 매점에 들렀다가 나오면서 그곳에 설치된 게시판에 눈길이 가 닿습니다. 그곳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습니다.

“이곳은 직원지대와 병사지대로 나누어지는 경계선으로 1950년∼1970년까지 철조망이 쳐있었다. 병원에서는 전염병을 우려하여 환자 자녀들을 직원지대에 있는 미감아 보육소에 격리하여 생활하게 하였으며, 병사지대의 부모와는 이 경계선 도로에서 한 달에 단 한번 면회가 허용되었다. 이때 미감아동과 부모는 도로 양옆으로 갈라선 채 일정한 거리를 두고 눈으로만 혈육을 만나야만 했고 이 광경을 본 사람들이 ‘탄식의 장소’라는 의미로 ‘수탄장’(愁嘆場)이라 불렀다.”

글귀와 함께 당시 상황을 담은 흑백 사진이 눈에 띄었는데, 보면서 가슴 한 구석이 먹먹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한참을 그곳에 머물며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어떤 심정이었을까? 도로 저편에 있는 자신의 아이를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은? 그리고 그 부모를 바라보고 있는 아이의 심정은? 원망이었을까? 그리움이었을까? 아니면 미안함이었을까?

서로를 애잔함으로 바라보았을 그 부모와 자식들은 눈으로 무슨 말을 주고 받았을까? 그러면서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나는 어떤 마음으로 내가 만나는 사람들을, 주어진 그분들과의 만남을 바라보고 있는가?

2011년 새로운 한 해를 맞고서, 첫 한 달을 다 채워갑니다.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 시간은 어김없이 흐르고 날들은 하루하루 바뀌어 가지만 그 시간들을, 날들을, 나아가 수많은 만남들을 나는 어떻게 맞이하고 있을까?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혹여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며 무덤덤하게 흘려보내고 있지는 않은지?

“한 달에 단 한 번 면회가 허용되었다”는 글귀를 보면서, 하루하루 주어지는 시간들, 은혜로 주어지는 만남들의 귀중한 가치를 되새기게 됩니다.

/서달원 소록도성당 주임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