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 가면 진료를 받기 위해 아픈 아이를 안고 몇 시간씩 대기실 앞에서 기다리는 부모들을 볼 때가 있다. 부모들 마음은 모두 ‘좋은 진료를 빨리 받고 싶어 할 텐데’하면서 필자는 빨리 공정한 재판을 받고 싶어할 재판 당사자들을 떠올려 본다.

종종 ‘형사든 민사든 거짓말 잘하는 사람이 이긴다’, ‘길게 끌수록 돈 많은 사람이 이긴다’라는 말들을 듣는데, 이런 말을 들을 때면 백성을 다스림에 있어서 취해야 할 절차 및 마음가짐 등을 다룬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牧民心書)’ 중 한 대목을 다시금 되새기게 된다.

“무릇 소송에 있어서 급하게 달려와 고하는 자가 있거든 그 말을 얼른 믿지 말고 늦추어 응하여 천천히 그 실상을 살필 것이다-무릇 소송을 제기하는 사람의 말이 비록 크게 놀랄 만한 일이라도 한 쪽 편의 말만을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매양 보매 수령으로서 세련되지 못한 자는 갑이 제소해 오면 갑이 옳다고 하여 장황하게 논단하여 을을 간사한 자로 만들고, 을이 제소해 오면 을이 옳다고 하여 앞서의 견해를 완전히 뒤집어 갑이 거짓이라고 만든다. 두 번, 세 번 번복하며, 아침, 저녁으로 변하는 것이 익힌 노루 가죽이나 성낸 두꺼비의 씨름 같아서 조롱하는 소리가 온 고을에 넘칠 것이다”

이 말에서처럼 공정한 재판과 신속한 재판은 서로 이율배반적인 관계에 있기 때문에 재판과정에서 ‘신속·경제’를 너무 강조할 경우 자칫 ‘적정·공평’을 소홀히 할 수 있게 될 가능성이 높다. 한편, 소송이 지나치게 지연될 경우 권리보호시기를 놓치거나 증인 등의 기억쇠퇴로 쟁점에 대한 해명이 불가능해져서 결국 소송의 적정성을 해칠 수도 있다. 그리고 소송을 끌수록 그만큼 비용도 더 지출하게 된다.

당사자들은 불리한 사실은 은폐하거나 부인하고 유리한 사실은 왜곡하거나 과장하는 경향이 있고, 사실관계를 잘 알고 이를 밝혀 줄 것이라 생각하고 부른 증인들이 당사자들과의 인간적인 관계 등 때문에 위증하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도 없다.

어느 조사기관의 조사 결과에 의하면 2007년 우리나라 위증 사범이 인구비를 고려할 때 일본의 24배에 달한다고 한다. 이를 잘 가려 공정하면서도 신속하게 재판을 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빠르고도 공정한 재판을 받고자 하는 것은 누구나 원하는 바이고 이를 요구할 권리가 있다. 이를 만족시켜야 할 일이 필자와 같은 판사의 책임이자 의무이다. 항상 내가 또는 내 가족이 당사자라고 생각하고 아픈 아이를 안고 있는 부모의 마음이 되어 최선과 최고의 재판을 하기 위해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그리고 필자를 포함한 모든 판사들의 이러한 마음과 고충들이 당사자들에게도 전해졌으면 하는 작은 바람도 함께 가져 본다.

우리 민사소송법은 제1조 제1항에서 ‘법원은 소송절차가 공정하고 신속하며 경제적으로 진행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제2항에서 ‘당사자와 소송관계인은 신의에 따라 성실하게 소송을 수행하여야 한다’고 각각 규정하고 있다. 즉 전자가 법원의 몫이라면 후자는 당사자와 소송관계인의 몫이다. 적정·공평하고 신속·경제적인 재판은 당사자 및 소송관계인의 신의칙에 따른 소송수행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온전히 실현될 수 없는 것이다.

/이양희 광주지방법원 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