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잘 지내셨습니까? 토끼의 해, 벌써 두 번째 달이 끝나갑니다. 올 겨울은 유난히 추웠습니다. 뉴스를 통해 지역에 따라 90년이 넘게, 그러니까 근 100년 만에 이런 추위를 맞는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이제는 추위가 많이 가시고 봄볕이 내리쬐는 날들이 많습니다만, 아직 봄이 온 것은 아니니 추위에 감기 들지 않도록 건강에 유의하셔야 하겠습니다. 다음달은 춘삼월이니 겨울이 가기 전에 눈 이야기 하나 해보고 싶습니다.

소록도는 한겨울이어도 눈이 거의 없다고, 설혹 눈이 내리더라도 낮에 햇볕이 반짝 나면 금방 녹는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겨울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다른 곳도 그러겠습니다만 이번 겨울 이곳에도 많은 눈이 내렸습니다. 바닷가라서 체감온도도 만만치가 않네요. 눈이 소복이 내린 날 아침, 자동차 운행이 어려워 1번지(직원성당)에서 2번지(환우분들 성당)까지 장화 신고 걸어갔다가 미사 마치고 오는데, 병원 의료부장님이 그럽니다. “올 겨울은 서 신부님 때문에 하느님께서 은총(눈)을 많이 내려주시는 것 같다”고! 글쎄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 은총(눈과 추위) 덕분에 사제관에는 수도관이 얼어버렸습니다. 다행히 욕조에 받아놓은 물로 변기 물은 해결을 합니다만, 온수가 나오지 않으니 씻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닙니다. 사람을 불렀습니다만 어디에서 이상이 생겼는지 찾아내질 못하네요. 그렇게 며칠을 살다 보니 금방 얄팍한 생각이 듭니다. ‘겨울 동안만 교육관으로 옮겨서 지낼까?’ 교육관에는 온수가 나오거든요! 하지만 버텨봅니다.

신자분들이 사회생활하면서 겪는 어려움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고, 손쉽다고 자꾸 편한 것들에 맛들이다 보면 나중엔 저 자신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입니다. 누가 보면 지질이 궁상, 의미 없는 일에 사서 고생한다고 하겠지만, 그렇게 지내다 보니 깨닫는 것도 있습니다.

물을 물 쓰듯이 한다고, 항상 흔하고 쉽게 접하던 것들(물도, 숨 쉬는 공기도)이 없으니, 그 흔한 것들이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 새삼 깨닫습니다. 그러고 보면 없다는 것, 부족함, 결핍은 그 자체로 ‘좋은 것’은 아니지만, 그 부족함을 통해서 나에게 지금 있는 것, 그것이 물건이든, 사람이든,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 은혜로운 것인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그러고 보면 의료부장님 말씀이 맞는 말 같습니다. 하느님은 저를 이곳 소록도로 불러주시고, 정말 감사한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 깨닫도록 눈(은총)을 내려주신 것입니다.

생활하다 보면 드문 행운을 좇다가 주위에 널린 행복을 놓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커다란 행운도 좋습니다만, 작은 행복에 마음 모아보시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네요.

춥습니다! 다음달에 소식 전할 때는 따뜻한 봄날, 새로운 은혜 나눌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건강하세요!

/서달원 소록도성당 주임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