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인들은 법조인들을 ‘말을 잘하는 사람’ 정도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필자도 법조에 들어오기 전에 법조계를 생각할 때면, 미국 영화에 나오는 말을 잘하는 변호사들을 떠올렸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막상 법조에 들어와서 실무를 하다 보니, 말을 잘하는 것 이전에 말을 잘 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말을 잘 들어주면 그 안에 많은 정보가 있으며, 오해나 착오를 줄일 수 있는 등의 유익한 점이 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런 부분은 법조계에 들어오기 전부터 이미 알고 있던 부분이기도 하다. 오히려 법조계에 들어와서 깨닫게 된 것은, 정보로서의 가치가 없는 말일지라도 이를 잘 들어주는 것이 꽤 중요한 행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말 들어주기의 이러한 측면과 관련하여 ‘절차적 만족’이라는 용어가 곧잘 사용된다. 상대의 말을 들어준다고 하여 실체적인 부분이 바뀌지는 않는다 할지라도, 상대방으로서는 자신이 하고 싶었던 말을 하고 그 말을 처분권자가 진지하게 들어주는 과정을 거치게 될 경우 그 절차 자체에서 어떤 만족감을 얻게 되는데, 이를 ‘절차적 만족’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게다.

필자가 종전에 공익법무관으로서 국선변호를 할 때의 경험이다. 처음에는 자백하는 피고인에 대하여 이미 피의자 신문조서에 드러나 있는 정상관계를 굳이 피고인 신문 시에 다시 물어 볼 필요가 있을까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피고인들이 공개된 법정에서 자신들의 변명과 주장이 변호인의 입을 통하여 다시 한 번 재판부에 전달되는 것에 대하여 절차적 만족을 얻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을 직접 재판부에 말할 기회가 주어졌다는 느낌 때문인지 재판에 대한 후회가 적게 남는 듯했다.

한편, 검사로 임관한 이후 고소사건에 대하여 무혐의 처분을 하게 될 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사건의 내용상 고소인을 불러서 다시 한 번 이야기를 들어본다 한들 결론이 달라질 상황이 아니었지만, 다시 한 번 고소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고소인의 마음을 어느 정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 경우 그 고소인은 비록 피고소인에게 무혐의 처분이 내려지더라도 자신이 할 이야기를 다 하였음에도 그러한 결과가 나왔다는 생각에 이제 그 처분을 받아들이고 마음속에서 분쟁의 응어리를 지우고 살아 갈 수도 있을 것이다.

법조계가 일반인들로부터 불신을 받고 있는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잘못을 저질러서 불신을 받는 부분은 어쩔 수 없지만, 결과가 정당함에도 괜한 오해와 비난을 사는 경우도 있다.

필자는 이런 부분과 관련하여 “정의는 행해져야할 뿐만 아니라 행해지는 것처럼 보여야 한다”는 법언을 생각해 본다.

정의가 행하여졌음을 상대방에게 알리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설명하고 홍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전에 상대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것이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그래야만 상대방으로서도 적정한 절차를 거쳐서 나온 결과라고 생각하여 더 잘 승복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몽구 광주지방검찰청 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