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 사회에는 인터넷을 통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음란물과 폭력물 등 청소년에 대한 유해물이 광범위하게 퍼져있습니다.

이러한 유해환경 때문에 요즘 청소년들은 성(性)에 대한 윤리의식 부재와 성폭력에 대한 범죄의식조차 미약하다는 문제점을 언론을 통해 접한 적이 있습니다.

필자는 청소년들의 성범죄 문제가 더 이상 ‘남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청소년 성범죄의 심각성을 절감했던 사건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필자가 2010년 변호한 사건은 고등학교 3학년인 피고인 갑(甲)과 을(乙)이 만 16세 소녀인 피해자 병(丙)을 합동하여 성폭행했다는 것이 공소사실의 요지입니다.

피고인 갑은 이 사건이 발생하기 약 1년 전에 피해자 병을 인터넷 채팅사이트를 통해 알게 되었는데, 처음 만나는 날 바로 합의하에 성관계를 가졌다고 합니다.

이후 두 사람은 서로 연락 없이 지내던 중 사건 발생 1주일 전에 피해자가 피고인 갑에게 보낸 문자메시지를 매개로 다시 만나게 됐습니다. 하지만 사건 당일 피고인 갑이 친구인 을의 집에 피해자를 데리고 가 세 사람이 함께 성관계를 가졌다가 피해자의 신고로 체포돼 구속기소됐습니다.

필자는 황급히 사무실을 찾아온 피고인들의 부모들에게 피고인들이 기소된 범죄는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해당하는 중대 범죄임을 인식시킨 후 자세한 사건의 경위를 파악하여야만 변론의 방향을 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필자는 피고인들을 수차례 만난 후 두 가지 점에 관해 상당한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 고민은 피고인들의 인상착의나 면담 태도, 학교에서의 생활모습 등이 지극히 평범한 학생으로 보였다는 점입니다.

두 번째 고민은 피고인들이 이 사건에 이른 경위에 비추어 무죄 주장을 할 것인지, 아니면 공소사실을 자백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었습니다.

필자는 피고인들에 대한 보석허가신청을 하면서, 공소사실에 대하여 자백하고 이 사건에 이른 경위와 피고인들의 정상관계에 대하여 구체적이고 자세하게 기재하여 재판부에 제출했습니다.

피고인들이 공소사실을 자백한 것은 비록 피해자 병이 피고인 갑과 1년 전에 성관계를 했다고 하더라도, 피고인 을까지 가세한 성관계는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여 강제적으로 이뤄진 사실을 부인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공판기일에서 피해자가 이례적으로 자진출석하여 피해자 입장에서 진술하였고, 공판기일 다음날 피고인들의 부모와 피해자 부모 사이에 합의가 이뤄졌으며, 피고인들은 보석으로 석방되었습니다. 재판부는 이 사건에 이른 경위와 피해자의 선처 탄원, 피고인들의 정상관계 등을 고려하여 피고인들을 소년부로 송치하는 관용을 베풀었습니다.

필자는 이 사건을 변호하면서 특별한 범죄전력 없이 학교생활을 성실하게 해왔고, 야간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비를 보탤 정도의 평범한 고등학생이 특별한 문제의식 없이 특수강간이라는 중대한 범죄에 이르게 됐다는 점에서 비단 일부 청소년들의 비행으로만 치부하고 넘어갈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아가 청소년들의 성에 대한 의식과 실태를 정확히 파악하여 청소년들에 대한 현실적인 성교육을 실시하고, 청소년 성범죄에 대한 우리 사회의 자정력을 높일 수 있는 제도적인 대책마련이 절실하다는 점을 느꼈습니다. 현재 우리 사회는 어른들의 생각보다 훨씬 심각한 비율로 청소년이 가해자 혹은 피해자로서 성범죄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김정호 광주지방변호사회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