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처음 변호사로 법조생활을 시작했다. 약 2년여 동안 많은 의뢰인과 다양한 사건들을 겪으면서 풍부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짧은 변호사 생활 중 기억에 남는 사건이 하나 있다. 군에 간 아들이 선임병 등으로부터 가혹행위를 당해 정신병이 발병하였으나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 상태에서 휴가를 나왔다가 건물 옥상에서 투신하여 자살한 사건이었다.

당시 군에서는 사건을 축소하고자 단순 자살로 처리하였다. 그러나 망인의 부모는 군에서의 가혹행위로 정신병이 발병한 상태에서 자살한 것이므로 단순 자살이 아니라 순직에 해당한다는 주장을 줄기차게 하였다.

그리하여 자식의 명예회복을 위해 보훈청에 망인을 국가유공자로 인정해 줄 것을 신청하였으나, 보훈청은 망인이 국가유공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결정을 하였다.

한편,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등에서는 군에서의 가혹행위를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군에서는 끝까지 단순 자살로 규정하였고, 결국 망인의 아버지가 필자를 찾아와 상담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당시 필자는 기록을 검토하면서 울분을 금치 못하였다. 꽃다운 생명 하나가 피지도 못한 채 스러져 갔음에도 불구하고 누구 하나 제대로 책임지려고 하지 않는 현실이 너무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필자는 의뢰인과 함께 열과 성을 다하여 사건을 진행하였고, 결국 행정심판위원회에서 국가유공자 불승인 처분을 취소하라는 결정을 얻어냈다. 필자는 당시 결정을 전해 듣고 뛸 듯이 기뻐하며 의뢰인에게 그동안의 노고를 위로했던 기억이 난다.

현재 검사로 재직하고 있는 필자가 변호사 시절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이 다소 생뚱맞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변호사에서 검사로 자리의 이동은 있었으나 역할이 달라지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변호사일 때에는 의뢰인의 이익을 대변하여 의뢰인을 대신해 진실을 주장하였다면 현재는 사익이 아닌 공익을 대변하는 것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실체진실의 발견을 위해 사건을 끝까지 파고들어 범죄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게 하거나 무고한 피의자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역할, 즉 진실발견을 위한 역할은 동일하기 때문이다.

국민들이 검찰에 대하여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는 검사 개개인이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여 파사현정과 범법필벌을 실현함과 동시에 피해자의 멍든 가슴을 어루만져 해결해 가야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 검사장님으로부터 ‘任重道遠(임중도원)’이라는 경구를 들은 것이 생각나 몇 자 적어본다. 그 뜻은 ‘임무는 막중하고 갈 길은 멀다’라는 것인데, 검사의 역할을 단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말이 아닌가 싶다. 막중한 임무를 최선을 다하여 실수없이 해나갈 때 국민들로부터 신뢰도 받고 사랑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경석 광주지검 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