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살인범도 용서할 수 있는 용기와 따뜻함을 가진 훌륭한 검사가 되길 바란다.’

제가 법대에 진학했다는 이야기를 들으신 집안 어르신이 이런 이야기를 해주신 적이 있습니다.

초임검사 시절, 수시로 폭력을 휘두르던 아버지를 살해한 어린 학생 사건을 조사하게 되었습니다.

창백한 얼굴로 떨고 있던 그 학생을 보는 순간, 저는 극악한 죄를 저지른 죄인이긴 하지만, 폭력을 휘두르던 아버지를 살해한 그 학생은 그동안 얼마나 많은 아픔과 말 못할 고통을 겪었을지, 그 아이가 그런 고통을 겪고 있을 때 사회는 그 아이에게 무엇을 해주었는지 고민하게 되었고, 그 학생을 용서해주는 것이 정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저는 그 학생을 구속기소했습니다. 무엇이 저로 하여금 그 학생을 처벌해달라며 법정에 세우게 한 것일까요?

‘아들에게 맞아 죽어가던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 아버지가 겪던 아픔이나 말 못할 고통은 없었을까? 그걸 알지 못한다면 그 아들을 용서할 자격이 없지 않을까?’

검사의 권한인 기소유예를 행사하여 그 학생을 용서해야 할 것 같다는 저에게, 존경하는 선배가 수사기록을 찬찬히 살피고는 이곳저곳 멍이 들어 누워 있던 그 학생의 아버지 사진을 펼치면서 던져준 이야기입니다.

번민 속에 며칠을 보내고 저는 그 학생을 처벌해달라며 법정에 세웠습니다.

얼마 전 언론에는, 성관계를 촬영한 동영상을 남편에게 전달하겠다며 유부녀를 협박해 2억여 원을 뜯어내고 갈비뼈가 부러질 정도로 폭행을 한 전과 7범의 피의자에 대한 구속영장을 법원에서 기각하고 풀어주는 바람에 그 피의자가 자취를 감추고 도주하여 한 달 후에서야 간신히 붙잡았다는 내용의 기사가 보도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 기사를 보며, 저는 그 피해자가 협박을 당해 2억여 원을 뜯기고 갈비뼈가 부러지는 폭행을 당하면서 느꼈을 고통이나 절망감이 어땠을지 생각해봤습니다.

그리고 피의자가 도주하여 잡히지 않고 있던 그 한 달 동안 피해자가 겪었을 공포는 또 어떠했을지 헤아려봤습니다.

피의자의 인권뿐만 아니라 범죄로 고통받고 있는 피해자들의 말 못할 아픔까지도 헤아리고 따뜻하게 보듬을 수 있는 정의로운 형사법제도를 희망해봅니다.

/정희도 광주지방검찰청 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