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말부터 현재까지 우리나라의 기술문명은 당시로선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했다. 하지만, 같은 시대에 도입된 우리나라 근대적 사법제도는 기술문명의 발전과는 별로 상관이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최근까지 우리나라에서 민사재판을 받으려면, 당사자들은 종이에 글씨를 써서 그 서류를 일일이 우체국을 통하거나 법원을 직접 방문해서 접수했다. 이때마다 비용과 시간이 많이 소요됐다.

또, 다른 기관 등에 대해 그 기록을 자기 사건의 담당재판부로 송부해 달라는 신청을 한 뒤 법원으로부터 기록 도착 통지서를 받고 법원에 가보면 자신의 기록을 판사가 보고 있으니, 다음에 오라는 말을 듣고 발길을 돌리는 경우도 많았다.

이 같은 일은 재판을 담당하는 법원에서도 마찬가지여서 당사자들로부터 위와 같은 방법으로 접수된 서류를 시간순서대로 편철하고, 당사자로부터 부본을 받아 우체국을 통하거나 집행관들을 통하여 상대방에게 송달해야 했다.

이는 재판절차가 지연되는 주원인이 되기도 했다. 또 산더미처럼 쌓인 서류를 과사무실에서 판사실로, 또 판사실에서 법정으로 옮겨 보존하면서 많은 예산과 인원이 소요됐다.

이 같이 근대 사법제도는 ‘종이’로 만들어진 유형물인 기록을 기반으로 이루어진 제도였다.

그러나 종이 기록은 옛 추억이 될 것 같다. 지난 2일부터 전자소송제도가 도입되면서 민사재판을 받는 당사자들은 법원에 갈 필요 없이 자신의 집에서 간단하게 각종 재판 관련 기록을 제출할 수 있게 됐다. 근대 사법제도가 도입된 지 100여 년 만에 이루어진 획기적인 변화다.

전자소송은 전자소송시스템을 이용해 소를 제기하고 소송절차를 진행하는 재판방식이다. 전자소송을 이용하려면, 인터넷이 가능한 컴퓨터, 문서작성용 소프트웨어, 스캐너와 공인인증서만 있으면 된다.

마치 다른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접속해 회원가입을 하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대법원 전자소송 인터넷홈페이지(ecfs.scourt.go.kr)에 접속해 사용자등록(공인인증서를 이용한 회원가입절차)을 하고, 제시되어 있는 설명에 따라 빈칸을 채운 뒤 신용카드나 계좌이체 방식으로 인지대와 송달료만 납부하면 소장을 제출할 수 있다.

답변서나 준비서면도 이 같은 절차를 거치면 된다. 상대방이 내는 서류도 곧바로 확인할 수 있으며 다른 기관에서 오는 사실조회내용도 도착 여부와 내용을 손쉽게 파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번거로운 열람·등사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언제 어디서나 소송기록을 모두 확인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당사자 사이에 생긴 분쟁을 소송을 통해서 해결하는 것은 가능하면 피해야 할 일이지, 권할 만한 일은 절대 아니다. 그런 점에서 전자소송제도를 만들고, 이를 홍보하는 것이 국민에게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소송을 제기하려는 당사자들에게 과도한 비용을 부담시키거나 복잡한 절차를 거치게 해 소송을 제기할 수 없게 만드는 제도는 없어져야 할 것이다.

전자소송제도는 이 같은 점에서 법원의 문턱을 낮춰, 사법서비스를 이용하려는 국민이 더 편하고, 저렴하게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인 만큼, 널리 보급되었으면 한다.

판사와 당사자 모두 태블릿 PC를 보면서 현장검증을 하고, 열심히 자신의 주장을 피력하는 모습을 꿈꿔 본다.

/김성흠 광주지방법원 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