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표는 노고단, 동반자는 섬진강 강둑길 따라 그리움이 마중 온다
2011년 05월 09일(월) 00:00 가가
〈17 〉 섬진강 구례군길
구례구역 ∼ 섬진강 어류생태관
구례구역 ∼ 섬진강 어류생태관
섬진강을 따라 이어지는 잔디밭 둑길은 섬진강과 지리산을 한눈에 조망하며 걸을 수 있는 길로, 도시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 걷기 여행의 명소다. /최현배기자 choi@kwangju.co.kr
조선후기 지리학자인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전남 구례를 ‘삼대삼미(三大三美)’의 땅이라고 썼다. 지리산과 섬진강, 널찍한 구례 들판을 가지고 있어서 삼대(三大)요, 자연 풍광이 아름다우니 경관미가 있고 넘치는 소출에 인정미(人情美)가 있으니 삼미(三美)의 고장이라는 것이다.
이중환의 택리지가 아니더라도 구례는 지금 관광지로 돋움하고 있다.
특히 구례를 휘돌아 굽이굽이 흐르는 강물, 강변 둑방길을 따라 숨겨진 작은 마을들, 마을 앞 느티나무 등은 한 번 걸어보고 훌쩍 떠나는 외지인에겐 여행의 낭만을 주는 관광 코스다.
구례군 구례구역에서 동해·마고 마을∼사성암∼죽연마을∼문척교∼섬진강 수달 생태경관보전지역을 거쳐 오봉정사까지 이어지는 12㎞ 구간은 걷는 내내 지리산 차일봉과 노고단이 보여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반면 지역 주민들에게 강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닌, 사람살이가 이어지는 공간이다. 흐르는 것 같지 않게, 묵직하게 흘러가는 섬진강은 구례군 문척면·토지면, 간전면 마을 주민들의 숱한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강을 따라 중·하류의 밭과 산자락에서 새벽부터 밤까지 몸이 부서져라 농사를 지었던 주민들에겐 이 강은 삶의 터전이다. 더운 여름이면 강에서 목욕을 하고 고동과 쏘가리, 참게를 건져 올려 매운탕을 해먹는가 하면 마을 정자에 앉아 강바람을 맞으며 농사일, 자식 걱정 등 이런저런 얘기를 펼쳐놓은 공간이기도 했다.
가물땐 논이 거북 등처럼 갈라질까 안타까워서, 폭우가 쏟아지고 홍수가 나 강변 마을 앞집까지 물이 차오를 때는 기껏 가꾼 채소가 잠길까 두려워 걱정하며 지켜보던 곳이기도 하다.
구례 구역을 출발점으로 신월리 잔수마을을 거쳐 동해 마을로 이어지는 2.2㎞ 길은 둑방길이다. 잔디밭 둑길은 섬진강과 지리산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섬진강의 생명줄과도 같은 곳이다.
섬진강변에 전해오는 전설 한 토막. 원효대사가 어머니를 모시고 오산의 사성암에 들어가 불도를 닦고 있을 때 대사의 어머니가 강물 소리가 너무 커 잠을 잘 수 없었다고 한다. 대사는 섬진강으로 가 하늘을 쳐다보며 ‘어머니의 괴로움을 덜어드릴 수 있는 힘을 주소서’하며 시끄럽던 물소리를 인근 오산(鰲山) 밑에 모두 가두었다. 이때부터 섬진강 물이 잠자듯 고요하고 잔잔하게 되었다고 해 ‘잔수(潺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주민들은 풀어놓는다. 지금도 섬진강은 마을 앞을 유순하게 흘러가지만, 최근 강을 끼고 도는 마을 주변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정부의 4대강 살리기 사업으로 강변 둑방 길을 시멘트길로 포장하는 사업이 진행되면서 주민과 환경단체들의 목소리가 커졌고 반발도 거세졌다.
주민들과의 충분한 의견 수렴 없이 진행되던 사업은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결국 중단됐지만 잔디밭 둑방길 곳곳은 말끔한 포장길과 흙길 등이 어색하게 공존하고 있다.
둑방 길이 잠시 끊기는가 싶을 때쯤 보이는 마을이 동해마을이다. 그 마을 아래로 섬진강이 흘러간다. 이 구간부터는 강변을 따라 차량이 뜸한 2차로 포장도로가 문척교까지 이어진다. 차량으로 스윽 훑고 지나가거나 멀리서 볼 때 숨어있던 동해∼마고∼죽연 마을은 그제서야 강변을 따라 모습을 드러내고 오산 사성암 등으로 가는 길도 나타난다.
마을 앞 정자에서 만난 나이 지긋한 주민들은 황룡이 동해에 산다는 황룡부주(黃龍負舟) 형국이라 이름붙여진 동해(東海)마을, 시어머니가 삼을 삼는 형태라는 마고(麻姑)마을, 배형국으로 날씨 맑은 날이면 봉성산 그림자가 마을 앞 큰 연못(大沼)에 비춘다고 하는 문척면 가장 큰 동네 죽연(竹淵)마을 등의 내력과 강감찬 장군 덕에 모기가 없다는 동해마을 무문정(無蚊亭) 얘기 등을 들려준다. 동행한 신연숙 문화관광해설사는 “차량이 아닌, 몸으로 걸을 때만 듣고 볼 수 있는 얘기”라고 귀뜸했다.
문척교를 지나면서 서시교, 용호정을 거쳐 주욱 이어지는 둑길을 한없이 걷다 보면 접하는 게 ‘수달 생태경관 보전지역’.국립공원 관리공단도 이 구간을 중심으로 생태 관광 프로그램과 연계한 섬진강 걷기 탐방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대표적 걷기 구간이다.
이 구간을 지나 간전교를 거쳐 섬진강 어류생태관으로 이어지는 구간도 편안하게 걷기에 제격이다.
구례군 신연숙 문화유산해설사는 “섬진강 물길을 따라 나란히 이어지는 둑길과 강마을 풍경은 걷는 여행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면서 “섬진강 걷기의 참맛을 느낄 수 있도록 둑방길 및 안내판 정비와 주변 마을과 연계한 얘깃거리를 문화자원화하는 작업이 마무리되면 관광객들과 지역민들에게 한층 사랑받는 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을기자 dok2000@kwangju.co.kr
이중환의 택리지가 아니더라도 구례는 지금 관광지로 돋움하고 있다.
구례군 구례구역에서 동해·마고 마을∼사성암∼죽연마을∼문척교∼섬진강 수달 생태경관보전지역을 거쳐 오봉정사까지 이어지는 12㎞ 구간은 걷는 내내 지리산 차일봉과 노고단이 보여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반면 지역 주민들에게 강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닌, 사람살이가 이어지는 공간이다. 흐르는 것 같지 않게, 묵직하게 흘러가는 섬진강은 구례군 문척면·토지면, 간전면 마을 주민들의 숱한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강을 따라 중·하류의 밭과 산자락에서 새벽부터 밤까지 몸이 부서져라 농사를 지었던 주민들에겐 이 강은 삶의 터전이다. 더운 여름이면 강에서 목욕을 하고 고동과 쏘가리, 참게를 건져 올려 매운탕을 해먹는가 하면 마을 정자에 앉아 강바람을 맞으며 농사일, 자식 걱정 등 이런저런 얘기를 펼쳐놓은 공간이기도 했다.
섬진강변에 전해오는 전설 한 토막. 원효대사가 어머니를 모시고 오산의 사성암에 들어가 불도를 닦고 있을 때 대사의 어머니가 강물 소리가 너무 커 잠을 잘 수 없었다고 한다. 대사는 섬진강으로 가 하늘을 쳐다보며 ‘어머니의 괴로움을 덜어드릴 수 있는 힘을 주소서’하며 시끄럽던 물소리를 인근 오산(鰲山) 밑에 모두 가두었다. 이때부터 섬진강 물이 잠자듯 고요하고 잔잔하게 되었다고 해 ‘잔수(潺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주민들은 풀어놓는다. 지금도 섬진강은 마을 앞을 유순하게 흘러가지만, 최근 강을 끼고 도는 마을 주변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정부의 4대강 살리기 사업으로 강변 둑방 길을 시멘트길로 포장하는 사업이 진행되면서 주민과 환경단체들의 목소리가 커졌고 반발도 거세졌다.
주민들과의 충분한 의견 수렴 없이 진행되던 사업은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결국 중단됐지만 잔디밭 둑방길 곳곳은 말끔한 포장길과 흙길 등이 어색하게 공존하고 있다.
둑방 길이 잠시 끊기는가 싶을 때쯤 보이는 마을이 동해마을이다. 그 마을 아래로 섬진강이 흘러간다. 이 구간부터는 강변을 따라 차량이 뜸한 2차로 포장도로가 문척교까지 이어진다. 차량으로 스윽 훑고 지나가거나 멀리서 볼 때 숨어있던 동해∼마고∼죽연 마을은 그제서야 강변을 따라 모습을 드러내고 오산 사성암 등으로 가는 길도 나타난다.
마을 앞 정자에서 만난 나이 지긋한 주민들은 황룡이 동해에 산다는 황룡부주(黃龍負舟) 형국이라 이름붙여진 동해(東海)마을, 시어머니가 삼을 삼는 형태라는 마고(麻姑)마을, 배형국으로 날씨 맑은 날이면 봉성산 그림자가 마을 앞 큰 연못(大沼)에 비춘다고 하는 문척면 가장 큰 동네 죽연(竹淵)마을 등의 내력과 강감찬 장군 덕에 모기가 없다는 동해마을 무문정(無蚊亭) 얘기 등을 들려준다. 동행한 신연숙 문화관광해설사는 “차량이 아닌, 몸으로 걸을 때만 듣고 볼 수 있는 얘기”라고 귀뜸했다.
문척교를 지나면서 서시교, 용호정을 거쳐 주욱 이어지는 둑길을 한없이 걷다 보면 접하는 게 ‘수달 생태경관 보전지역’.국립공원 관리공단도 이 구간을 중심으로 생태 관광 프로그램과 연계한 섬진강 걷기 탐방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대표적 걷기 구간이다.
이 구간을 지나 간전교를 거쳐 섬진강 어류생태관으로 이어지는 구간도 편안하게 걷기에 제격이다.
구례군 신연숙 문화유산해설사는 “섬진강 물길을 따라 나란히 이어지는 둑길과 강마을 풍경은 걷는 여행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면서 “섬진강 걷기의 참맛을 느낄 수 있도록 둑방길 및 안내판 정비와 주변 마을과 연계한 얘깃거리를 문화자원화하는 작업이 마무리되면 관광객들과 지역민들에게 한층 사랑받는 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을기자 dok2000@kwangju.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