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책이 있을 것 같은데’ 하고 생각했는데, 정말 손에 쥐게 되는 책이 있다. 케서린 애셴버그의 ‘목욕, 역사의 속살을 품다’(Clean: An Unsanitised History of Washing)도 그런 경우다. 누구나 경험하듯 이런 경우 한번 든 책을 단숨에 읽게 된다.

목욕은 삶의 여러 통과의례 즉 태어날 때와 세상을 떠날 때, 결혼을 할 때 등 존재 양식이 바뀔 때 행하는 의식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또 목욕을 대하는 태도는 그 사회가 청결(Clean)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달라져 왔다.

17세기 프랑스 귀족은 아마포 셔츠를 꼬박꼬박 갈아입고 손만 살짝 씻었다. 목욕은 거의 하지 않았다. 루이 13세가 처음으로 목욕을 한 것은 거의 일곱 살이 되어서였다. 그러나 1세기의 로마인은 하루 두 시간 넘게 물에 몸을 담그고 쇠로 만든 긁개로 기름과 땀을 제거했다. 이러한 큰 차이는 14세기 페스트로 인한 공중목욕탕의 폐쇄와 영혼을 강조하는 기독교적 분위기로 인한 육체적 부분을 경시한 것이 원인이다.

기원전 5세기 히포크라테스는 목욕을 적극 옹호했다. 그는 찬물과 뜨거운 물에 교대로 몸을 담그면 중요한 모든 체액의 균형을 맞출 수 있다고 믿었다.

17세기 중엽 한 프랑스 의사는 “목욕은 불필요할 뿐 아니라 남자들에게 매우 해롭다. 목욕을 하면 머리에 수증기가 찬다. 목욕은 신경과 인대의 적이다”라고 말했다. 또 일류 의사들은 인체의 분비물이 보호막을 형성하니 몸을 구석구석 씻지 말라고 권고했다. 1830년대에는 피부에 호흡기능이 있어 모공에 때가 끼어 막히면 이산화탄소가 피부를 통해 배출되지 않아 죽을 수 있다는 개념이 유럽과 북미 과학계에 널리 퍼져 있었다.

내가 목욕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아토피피부염 환자 때문이다. 25년 전 의과대학을 다닐 때는 아토피 피부염 환자는 될 수 있으면 목욕을 하지말라고 배웠다. 그러나 최근에는 날마다 샤워를 하도록 권유한다. 왜 이렇게 바뀌었을까? 목욕이 달라진 것은 없다. 목욕 후 3분 내에 보습제를 발라야 한다는 것이 덧붙여졌다. 바로 보습제를 바르지 않으면 물기가 증발하면서 피부가 더욱 건조해져 가려움증을 더 느끼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수건으로 피부를 톡톡 두드려 닦은 후 3분 내에 보습제를 발라 물기를 피부가 품고 가게 해야 되는 것이다. 어찌 보면 보습제가 피부에 보습을 해주는 것이 아니라 목욕 자체가 피부에 보습을 해준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 같다.

이 밖에도 목욕은 피부의 이물질을 제거해 주고 몸과 마음을 느긋하게 해주어서 아토피피부염 환자에게 도움이 된다. 나는 아토피 환자들에게 충치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하루 3번 올바른 칫솔질이 중요하듯이 아토피 피부염 치료를 위해서는 올바른 목욕법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목욕을 잘하지 않으면 그 어떤 치료를 해도 좋아지지 않는다.

증상이 심한 경우 탕목욕도 권한다. 그렇다면, 얼마나 탕에 있어야 할까. 손가락 끝에 주름이 잡힐 때까지이다. 물론 3분내 보습제를 바르는 것은 똑같다. 샤워와 목욕물의 온도도 중요한데 감기 걸리지 않을 정도로 미지근해야 한다.

목욕탕에서 유레카를 외쳤던 그리스 과학자 아르키메데스는 “긴 지렛대와 지렛목만 있으면 지구라도 움직여 보이겠다”고 말했다. 이를 약간 패러디해서 “목욕탕과 보습제만 있다면 아토피 피부염을 치료해 보이겠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김원영 우리들내과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