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없어졌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갓 임관한 초임 검사는 처음 몇 개월 동안 고참 검사실에서 근무하며 선배 검사로부터 수사기법이나 업무처리 방법을 배워야 하고 그 기간이 끝난 후에서야 독립을 하게 하는 제도가 있었다. 고참 검사는 초임 검사에게 일종의 멘토 역할을 하게 되는데, 업무적인 이야기뿐만 아니라 검사로서의 품행이나 민원인들을 대하는 태도 등 법전이나 교과서에서는 배울 수 없는 여러 가지 것들을 자연스레 전할 수 있었다.

몇 해 전 우리 방에도 초임 검사가 배치되었고, 대부분의 새내기들이 그렇듯이 그 검사도 열정으로 똘똘 뭉쳐 정말 열심히 일을 했다. 사안의 쟁점을 파악하는 능력도 훌륭했고 법리에도 참 밝았다. 그런데 조사를 하면서 사건 조사와는 상관없이 개인적인 의견이나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 본인은 검찰청까지 와서 조사를 받고 있는 민원인들의 처지가 안타까워서 하는 것 같았지만, 옆에서 보기에는 오해를 받거나 상처를 줄 소지가 다분해 보였다.

어떻게 충고를 해 주어야 가장 효과적일까 고민을 하던 차에, 함께 야근을 하며 중국집에서 주문한 짬뽕을 먹던 중 그 초임 검사가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느냐?”고 물었다. 아, 그렇지, 그 사건 이야기를 해주면 좋은 교훈이 되겠구나 싶었다. 사안은 이러했다.

지방의 한 소도시에서 근무할 때다. 어느 날 무기명의 제보가 들어왔다. 지자체의 고위 공무원이 비리의혹이 있으니 수사를 해 달라는 것이었는데, 구체적인 비위사실도 적혀 있지 않고 그저 막연한 내용뿐이었다. 그냥 무시하고 종결할까 하다가 혹시나 싶어 확인을 하던 과정에서 단서가 포착되었고, 그때부터 약 한 달간 의도했던 대로 수사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마지막 조사를 마치면서 그 공무원을 보고 있노라니, 공무원으로 정년 퇴직한 아버지 얼굴이 떠오르며 인간적으로 애잔한 정이 들었다. 그 사람도 정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이제 형사처벌을 받으며 불명예 퇴장을 해야될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 위로를 해 주고 싶은 마음에 “제 부친께서도 공무원 정년퇴직을 하셨습니다. 참 개인적으로는 마음이 안 좋습니다”라는 말을 해 주었고, 며칠 후 기소를 했다.

얼마 후 그 공무원은 재판을 받으며 재판장에게 탄원서를 제출했다. 차기 지자체장 선거에서 유력한 후보인 자신을 배제시키기 위해 지청장과 현직 지자체장이 서로 짜고 한 정치수사의 희생자라는 항변과 더불어 담당 검사가 공무원이었던 아버지 생각이 나 불기소 처분을 하려 했는데 위에서 지시를 하여 어쩔 수 없이 기소를 하게 되었다며 실토를 했다는 내용이었다.

한순간 정치 검사로 전락해 버린 지청장께 어찌나 미안하고, 그걸 그렇게 받아들인 그 사람은 또 어찌나 야속하던지. 식사를 마친 후 짬뽕 그릇을 신문지에 싸고 있는 초임 검사에게 한마디 덧붙였다.

자네가 검사실에서 하는 말들은 담당 의사가 암 투병 중인 환자에게 건네는 말보다 더 무섭다네, 말 한마디 내 뱉기 전에 한 번만 더 생각해 봐, 상대방 입장에서. 그 초임 검사는 지금은 멋진 중견 검사가 됐다. 그 공무원에게 내가 했던 말이 잘못된 것이었을까 아직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내가 했던 말은 그 사람에게는 감정을 가진 개인의 말이 아닌 검사의 말이었다는 것이다.



〈하재욱 광주지방검찰청 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