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 두 개(환우분들 성당, 직원 성당)를 혼자(?) 맡다 보니 좀처럼 휴가 내기가 어려웠습니다. ‘일상이 휴식’ 아니냐고 물어온다면 굳이 할 말은 없습니다만, 그래도 반복되는 일상에서 며칠 떠나보는 시간은 필요할 듯하여, 3일 동안 저를 위한 시간을 마련해봤습니다.

마침 동창신부가 소록도에서 자기가 맡고 있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하기에 겸사겸사 공동체를 맡기고 일상을 벗어나 봅니다.

‘3일 동안 나만을 위한 시간 마련하기(?)’ 거창한 것 같습니다만, 제가 휴가를 보내는 방식은 특별하지는 않습니다. 무작정 차를 몰고 동해안 고속도로 남단에서 강원도까지 드라이브하면서 경치를 보는 것, 라디오와 CD 음악을 듣는 일, 그러면서 일상 안의 일들을 조명해 보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런데 휴가 때 들었던 음악 한 곡 ‘장사익의 희망 한단’(원제:돌아오는 길)의 가사가 참 마음에 와 닿습니다.

제 마음속에서 그려지는 그림은 이렇습니다. 아마도 절망 가운데 있던, 희망 없는 날들을 보내고 있던 한 사람이 희망을 찾고 찾다가 발견하지 못하고 집으로 힘없이 돌아갑니다. 그리고 집으로 향하던 길가에 채소 몇 가지를 내다 파는 아주머니를 만나게 됩니다. 오죽 답답했을까? 그 답답한 심정에 아주머니에게 묻습니다. “희망 한 단에 얼마래요?” 그 아주머니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나도 몰라요.” 그런데 놀랍게도 모른다던 아주머니의 마지막 말이 그토록 찾던 희망을 발견하게 만듭니다.

아마도 살면서 ‘바라는 바’를 ‘희망’이라는 고상한 단어로 표현할 줄 모를 만큼 그 아주머니는 가방끈이 짧은 지도, 끝이 보이지 않는 고단한 삶을 ‘절망’이라는 언어로 포장할 만큼 여유가 없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아주머니는 삶의 고단함과 절망을 고상하게 포장하지도 않고, 자기 합리화라는 또아리 속에 주저앉아 있지도 않습니다. 노점상에 채소 몇 가지를 내다 팔아서 그걸로 자식들을 먹이고, 가르치고 그러면서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갑니다. “희망유? 채소나 한단 사가슈. 선생님∼.” 선생님이 사가는 채소 한 단이 선생님에게는 식탁에 오를 수도, 안 오를 수도 있는 반찬으로 끝날지도 모르지만, 아주머니에게는 자신의 고단한 삶과 자녀들을 위한 새로운 희망의 씨앗이 된다는 메시지를 읽습니다.

휴가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버스 정류장을 지나는데 전화를 받는 아주머니 한 분의 목소리가 차 안으로 흘러들어옵니다. “아이구! 선생님, 나 같은 것이 뭐라고 이렇게 전화를 주셨당가요!”

‘나 같은 것이 뭐라고?’ 생활하면서 자꾸 남에게 지지 않으려고, 높아지려고 하지 않았었는가? 솔직히 그러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길가에서 채소 파는 아주머니에게 희망을 물을 만큼, 그만큼 나는 겸손한가? 역시 그러지 않았습니다. 내 힘듦을 ‘고통’이라는 단어로 포장하고 나 자신을 합리화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소비하고, 신경을 곤두세웠습니다.

채소 파는 아주머니와 전화받던 아주머니가 제 스승입니다.

학생들이 방학하고, 날씨가 조금 더 더워지면 휴가들 떠나시겠지요? 휴가 가운데 희망 한 단씩 사가지고 오시기를….

〈서달원 천주교 소록도성당 주임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