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故 김수근(金壽根,1931∼1986)이 타계한 지 올해로 25년이 흘렀다. 그는 대한민국이 낳은 세계적 건축사(建築士)이자, 교육자이며, 잡지 발행인이기도 했고 예술가들의 후원자이었다.

김중업(金重業,1922∼1988)과 함께 대한민국 현대 건축 1세대로 평가받으며, 한국건축역사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평가된다.

그의 다방면에 걸친 한국문화에 대한 지원으로 인해, 1977년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에서,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 후원가인 로렌초 데 메디치(1449∼1492, Lorenzo de’ Medici :피렌체의 권력자이며 르네상스의 산파역할을 한 인물)로 비유되어 ‘한국의 로렌초 메디치’라 칭송받았다.

한국건축과 예술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이름, 김수근. 그는 70년대 우리나라 전통건축에 대한 고민 속에서 가장 인간적인, 가장 한국적인 건축재료는 무엇일까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된다.

그에 대한 해답으로 붉은벽돌, 즉 벽돌을 가장 인간적이고 한국적인 건축재료로 본다. 그 시기의 작품들로 공간사옥(1977)과 서울 대학로의 여러 건축물, 경동교회(1980)와 불광동 성당(1981) 등이 있다.

옛 전남도체육회관(1981, 현 빛고을 시민문화관 별관)도 이 시기의 작품으로 벽돌을 주 외장재로 사용하였다. 체육회관이라는 기능을 수용하면서 주변 암반과 자연지형, 레벨차이를 절묘하게 극복하여 자연과 주변과의 조화를 잘 이룬 작품이다.

이런 소중한 건물이 헐릴 위기에서 일부 건축사와 담당공무원의 노력에 의해 보존될 수 있게 되었고, 리모델링과 유지관리에 대한 아쉬움은 있지만 30년의 한 세대를 지탱하고 문화의 시대인 또 다른 한 세대를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그 장소와 공간의 쓰임은 거장 ‘김수근’이라는 이름과 건물의 용도에 걸맞지 않은 부분이 많다. 우리가 그 가치를 몰랐을 때는 그렇다손 치더라도 지금은 그 건물의 가치를 잘 인식하여 사용과 관리에 신중을 기해야할 때다.

현재의 사용계획은 식당(국밥집), 노인관련시설, 국악 및 임방울진흥회 관련시설, 광주문화재단 사무실 등으로 사용할 예정이란다. 초기의 입주계획상 어쩔 수 없다지만 지금이라도 다음 몇 가지를 생각해 보자.

첫째, 가칭 ‘김수근 홀’ 또는 ‘김수근 문화예술관’으로 명명하여 문화· 예술 향유 및 교육공간으로 사용하자.

김수근이 ‘한국의 로렌초 메디치’라 칭송받았던 것처럼 이런 장소를 통해 광주에 많은 문화·예술 후원자가 나오게 하고, 시민들은 좋은 공간에서 문화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자. 안양시는 거장 김중업건축사가 설계한 옛 유유산업공장을 매입, 리모델링을 거처 ‘김중업박물관’과 복합문화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참고해 보자.

둘째, 임방울전시관과 국악관련 체험장 및 전수관은 별도로 만들자.

이 건물은 대부분 사무실 용도로 설계되어 국악 관련 용도로는 적합하지 않고, 광주가 낳은 한국 국악의 보물인 명창 임방울의 전시공간으로는 더욱더 적절하지 않다. 잘못하다간 그의 명성과 가치, 품격에 누를 끼칠지도 모른다.

셋째, 광주에 산재해 있는 근· 현대 건축물을 발굴하여 문화유산으로 만들자.

문화적 가치와 역사적 의미 있는 많은 장소와 건물이 별다른 논의조차도 없이 사라지고 있다. 이는 우리의 소중한 유형문화유산을 버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더 늦기 전에 조사 발굴하여 자료화하고 그 가치를 공유하자. 그리하여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문화중심도시 광주가 되도록 하자.

〈박홍근 건축사·전남대 건축학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