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격을 높이기 위해’, ‘국격이란게 있는데’라는 말을 심심치 않게 듣게 된다. 이전에는 생소했는데, 내 기억으로는 아마도 G20 정상회의를 서울에서 개최하면서 이명박 대통령이 우리나라의 국격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고 표현한 뒤로 자주 쓰이는 것 같다.

사람에게는 인격이 있으니 나라에도 국격이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인격이라는 것은 인간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하는 것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 스스로 인간다움을 유지하기 위해 정진하는 것이 있을 것이다.

인격을 유지하고 높이는데 여러 가지 요소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도덕은 다른 모든 것을 압도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높은 지위에 있거나 부를 쌓았거나 학식이 높더라도 도덕적인 문제가 노출된다면 사회적으로 더 이상 존경받기 힘들 것이다. 마찬가지로 국격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 나라의 지도자의 품성이나 부패 정도에 따라 그 나라의 국격이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 나라의 지도자는 국민의 의식 수준이 그대로 반영되어 선출되는 것이고 부패지수는 부패행위에 대한 그 나라 구성원들의 수용 정도를 나타내는 것이므로 국격에서 이 두 가지는 매우 결정적인 요소이다. 일본이 경제적으로 부유한 나라이지만 국제적으로 존경받지 못하고, 미국이 강력한 국방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미워하는 나라가 더 많다는 현실은 이를 증명한다.

도덕적인 면에서 살펴본 우리의 국격은 참담할 지경이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우리나라 장관들의 도덕적인 수준은 검증과정에서 수많은 불법과 탈법 그리고 불명예스러운 일들에 연관되었음이 밝혀지고, 가장 가짓수가 적은 사람이 임명될 정도이다. 심지어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어도 역시 임명된다. 자신의 입신영달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자들이 국가의 중요한 직책을 맡게 된다면 과연 그들이 공명정대한 행정을 펼칠 수 있을까? 밝혀지지 않을 뿐 그들은 지금까지의 습관을 버리지 못할 것이다. 최근에는 국방에 관련된 비리들이 국민들로 하여금 밤잠을 청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전차의 포신이 갈라지고 엔진의 핵심 부품이 불량해서 전차가 멈추는 일이 허다하다고 하고, 연평해전에서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했다고 질책했던 자주포도 근본적인 원인은 비리에 있었다고 한다. 도대체 이 지경을 만들어 놓고도 북한과의 일전을 불사해야 된다고 하는 정치인들의 뇌구조는 어떻게 되어 있을까? 베트남의 패망원인이 바로 이러한 부패에 원인이 있다고 하는데 안보를 헤치는 이들이 발본색원되지 못하는 이유가 어디 있는 것일까?

우리가 34개의 회원국이 있는 OECD국가가 되었다고 하는데 부패지수로 본다면 어림없다. 10점 만점의 점수에서 우리는 5.4점으로 OECD평균 6.97에도 미치지 못한다. 178개국 중 39위이고 OECD국가 중 24위이다. 아시아에서는 싱가포르가 공동 1위이고 홍콩이 12위이다. 그 작은 나라들이 그토록 잘사는 이유는 우리보다 여건이 좋아서도, 더 많이 일을 해서도 아니다. 우리가 선진국이 되는 길은 투명하고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그것이 유일하고도 가장 빠른 길이다.

건강한 사고와 양심을 가진 정치인과 공무원이 성장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정치인이 다 그렇지, 일만 잘하면 되지, 내가 돈 벌고 사는 데만 지장 없으면 되지 하는 식으로 투표를 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암울하다.

세계에서 가장 깨끗한 나라 싱가포르는 탐오조사국을 운영하고, 12위의 홍콩에는 염정공서가 있다.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 설립이 무산되고 최근의 대검 중수부의 폐지와 함께 특별수사청의 설치에 반대하는 청와대를 보면서, 국격을 외치는 대통령이 왜 부패문제에는 소극적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임명재 약사·2005년 12월 수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