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나긴 장마가 끝나니 연일 땡볕입니다. 날씨가 많이 따뜻(?)하죠? 하루도 빠짐없이 비가 내릴 때는 이 비가 언제 그치나 했었는데, 이제는 연일 땡볕이니 시원한 소나기가 그리워집니다.

하루 두 번, 아침에는 환우 성당(2번지 성당)에서, 그리고 저녁에는 직원 성당(1번지 성당)에서 미사가 봉헌됩니다. 그런데 미사 때마다 건네는 인사말은 두 곳이 다릅니다. 환우들하고 미사 봉헌할 때는 ‘잘들 주무셨습니까?’, 직원성당에서는 ‘오늘 하루 참 따뜻했지요?’라고 인사를 건넵니다. 2번지 식구들은 아픈 데가 한두 군데가 아니기 때문에 하루에 드시는 약도 많은 편입니다. 그리고 생활이 복잡하지 않고 단조로운 생활이 반복되다 보니 저녁에 깊이 잠드는 분들이 적습니다. 그래서 건네는 인사말도 ‘잘 주무셨는가?’입니다. 그러고 보면 저녁에 잠 잘 자는 것도 복인가 봅니다.

직원성당은 저녁에 미사가 봉헌되는데, 요즘은 연일 찌는 듯한 날씨여서(특히나 고흥 쪽은 일조량이 많습니다.) 하루 일과를 마치는 저녁때쯤이면 파김치가 됩니다. 그래도 하루 일과를 기도 가운데 마감하려 성당을 향해 걸어오는 신자들의 발걸음을 보고 있으면 그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그래서 제 나름대로 위안과 용기를 주고 싶은 인사말은 ‘오늘 참 따뜻했지요?’입니다.

생활하다 보면 뜨거운 날씨만큼이나 우리 몸의 온도를 높이는 일들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그런 일들을 하루의 끝자락에서 하나하나 펼쳐놓고 따져보고 누구 탓인가 분석해 보는 일들이 때로는 의미 있고 꼭 필요한 때도 있지만, 어떤 때는 따져보고 떨쳐버리려고 애쓰는 것보다 뜨거운 것을 ‘따뜻하다’고 표현하는 것처럼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고, 보듬는 모습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열치열(以熱治熱)이라는 말처럼 열로써 열을 다스린다는 말도 있지만, 때로는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한줄기 바람이나, 고마운 물 한 잔이 식혀주는 것처럼 말입니다.

기온이 올라가고 날씨가 더워지니 2번지 환우분들 가운데는 몸에 난 상처가 덧나고, 봄가을 선선한 때도 잠 못 드는 날들이 많았는데 가뜩이나 무더워 잠 못 드는 분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래도 힘듦을 겉으로 다 표현하지 않고 참고 견뎌내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우리들 생활 가운데는 어떤 때는 떨쳐버릴 수 있는 일들도 있지만, 어쩔 수 없이 짊어져야 하는 수고로움, 짐들도 있습니다. 그 짐들을 나는 어떤 마음으로 대하고 있을까요?

사람의 힘으로 날씨를 함부로 바꿀 수는 없지만 각자의 마음은 스스로 하기에 따라 바꿀 수가 있답니다. 따뜻한 날씨, 쉽게 잠들지 못하는 하루하루, 소록도 환우들을 생각함이 시원한 한줄기 바람이기를, 시원한 물 한 잔이기를….

〈서달원 고흥 소록도성당 주임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