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빛 도시 건물을 달구는 한낮의 땡볕에 도로변 가로수조차 지친 여름이다. 뜨거운 열기로 몰아치는 햇살은 어느새 끈적이는 땀범벅이 되어 몸뚱이에 달라붙고, 간간이 스치는 소나기조차도 꿉꿉함을 더할 뿐이다.

‘의마심원(意馬心猿)’이란 말이 있다. ‘생각은 날뛰는 말과 같고 마음은 떠드는 원숭이와 같다’고 했으니, 도심 속 닫힌 사무실에서 무더위를 보내는 사람의 마음은 이미 산과 바다에 꽂혀 일이 손에 잡히지도 않아 보인다. 이럴 때 MS사의 창업자인 빌 게이츠의 가정을 한 번 돌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빌 게이츠의 아버지는 아들과의 대화를 즐겼고, 휴가철이 되면 다른 가족과 함께 여가를 보냈다. 빌 게이츠는 이때를 회상하여 “아버지는 다른 가족들과 같이 보내면서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관찰할 수 있게 했고, 무엇이 좋은 행동인지 나쁜 행동인지를 배우게 했다”고 말하였다.

하지만 부모가 보기에 어린 빌 게이츠는 대들기 좋아하는 문제아였다. 식사 자리에서 화가 난 아버지가 물컵 세례를 안기기도 하였으며, 어머니도 빌 게이츠의 말대꾸에 접시를 여러 차례 던졌다고 하니 말이다. 참다못한 아버지가 그를 아동 상담사에게 보냈을 때, 상담사는 ‘아들이 부모로부터 독립하려고 하니,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 낫겠다’는 한 마디를 전했다.

눈여겨 볼 것은 아버지의 태도 변화이다. 이때부터 아버지는 아들의 말을 말대꾸로 보지 않고 주장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엄하고 절제된 교육 환경에서 자란 빌 게이츠의 아버지는 전통적인 행동 방식에 맞춰 아들을 바라보았다. 따라서 빌 게이츠의 독특한 방식은 항상 ‘틀린’ 행동이었다. 하지만 자신과 ‘다름’을 인정하는 순간 아들의 행동은 자신의 주장이 담긴, 엉뚱하기는 하나 창의적인 생각이었다.

오늘날 빌 게이츠를 만들어 낸 힘은 생각의 전환이었다. 부모가 대든다고 느끼는 것이 아이의 입장에서는 논리적으로 대응하는 것임을 인정한 빌 게이츠의 아버지가 있었기에 오늘날 빌 게이츠가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부모와 생각을 나눈다는 것은 인생에 큰 변화를 준다”는 빌 게이츠의 말은 부모의 역할을 잘 일러준다.

그런데 몇 해 전 행복가정재단이 우리나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행복에 대한 만족도’ 조사 결과에 의하면 청소년 3명 중 한 명은 부모에게 인정받지 못한다고 답했다. 한편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청소년의 가족관계 실태 분석’에 의하면 아버지 3명 가운데 한 명은 자녀와 대화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답변했다.

혹시 자녀의 말대꾸를 푸념하면서도 통보와 꾸지람이 대화의 전부는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고대하는 휴가를 맞아 산으로 바다로의 여행을 꿈꾸었다면, 자녀와 함께하는 공감과 소통의 장을 만들어 보는 것이 어떨까 싶다. 계곡에 함께 발을 담그고 아이의 이야기에 공감해 주고, 함께 누워 쏟아지는 별빛 속에서 과거와 미래를 함께 여행하는 시간이야말로 아이들이 자기주도적인 인생의 주인공으로 살아가게 하는 지름길일 것이다.

통계청의 ‘2011 청소년 통계 자료’를 보니, 성적이 좋은 학생일수록 아버지와 대화를 더 많이 한다고 한다. 성적이 좋아서 대화를 나누는 것일까, 아니면 대화를 많이 해서 성적이 좋아지는 것일까. 그렇다면 이 여름, 산으로 바다로 떠나는 우리는 자녀에게 과연 어떤 부모가 되어야 할까.

〈김창균 광주시교육청 장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