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처가 제사에 참석을 했는데 휘우뚱하며 시부모님 영정에 재배 드리는 여든네 살의 장모님을 보면서 인생이란 과연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열일곱 살에 시집을 오신 장모님은 장인어른이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는 바람에 신혼 생활이 아예 없었다고 한다. 그러다 그만 6·25 사변이 일어나 장인어른은 행방불명되고 친정 식구들도 지주라는 이유로 모두 학살당했다고 한다.

그 기가 막힌 운명 속에서도 사십 년 동안 매우 엄한 시부모님을 모시며 농사를 짓고 딸 둘을 키우셔서 근방에서는 억척스러운 과수댁으로 소문이 났고 또 효부상도 받으셨다고 한다.

처가는 하루에 열 댓 번쯤 시내버스가 다니는 시의 변두리에 있다. 장모님은 시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출가한 두 딸이 서로 모시겠다고 끈질기게 권유해도 “나는 내 집이 편하다” 하시며 일언지하에 거절하시고 닭, 강아지를 식구 삼아 그곳에서 홀로 살아오셨다.

아들을 못 낳으셔서인지 외손자들을 끔찍이도 귀여워하셔서 그놈들은 학교 다닐 때 혼날 일이 생기면 두 말 할 것도 없이 외가로 도망갔다. 그러면 장모님은 전화를 걸어 절대 나무라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고나서야 놈들을 데리고 오시는 것이었다.

세월이 흘러 근래에 와서는 우리 큰놈이 낳은 쌍둥이 증손자들을 애지중지하셨는데 쌍둥이가 아무리 시끄럽게 떠들어 대도 흐뭇한 표정을 감추지 않으셨고 마을 경로당에 가시면 그 애들 자랑만 하셨다.

그런데 그 장모님께 갑자기 치매가 찾아왔다. 처음에는 창고에 도둑이 들어서 매일 뭣인가를 훔쳐간다고 하시고 냉장고에 반찬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도 먹을 것이 전혀 없다고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를 하셨다.

그러다가 요즈음에 와서는 조금 전에 하신 말씀이나 들으신 이야기, 보셨던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신다. 엊그제 돌아가신 친척의 장례식장에 주춤주춤 불안하게 걸으며 다녀오셨어도 지금 그분이 살아 계신 줄 알고 또 얼마 전 시부모님 제사를 지내고도 제삿날이 며칠 남았냐고 자꾸 물으신다. 진지를 드시고도 상 차리라고 하시며 이상하게도 반찬은 쳐다보지도 않고 밥과 국만 잡수신다.

그리고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한참을 멍하게 앉아 계시다가 증손자들이 눈에 띄면 엷은 미소를 지으며 행여나 놓칠 새라 그 애들만 꾸준히 바라보신다. 치매와 고혈압을 치료하는 약을 드시면서도 지금 당신께서 무슨 약을 왜 잡숫는지 전혀 관심이 없다. 그저 약만 받아 잡숫고 허공만 쳐다보시다가 갑자기 옛날 일을 지금 일처럼 물어보신다. 정말 애처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오직 대화를 나누는 그 순간만 정상이다. 병원에서도 지금보다 더 심해지지 않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다고 한다.

홀로 사시는 것이 너무나 불안해서 딸 집 아니면 요양 시설에라도 제발 가시자고 간곡히 말씀드려도 집을 절대 떠나지 않겠다고 단호히 고개를 저으신다. 한번 ‘아니다’ 하시면 그것으로 끝이다. 그 고집 하나로 지금까지 수많은 역경을 헤쳐나오신 분이다. 장모님의 인생, 너무나 서글프다.

나는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인지 예순이 넘은 지금까지도 장모님을 ‘엄마’라고 부르며 나름대로 잘 모셔왔다. 장모님의 한평생을 새삼 뒤돌아보면서 지금 이 시점에서 과연 어떻게 해드리는 것이 ‘효도’라는 두 글자에 합당한 것인지 정말 곰곰이 생각해본다.

〈이상욱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