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름엔 유난히 비가 오는 날과 흐린 날이 많았다. 그래서 그런지 가을을 기다리는 내 마음 한쪽엔 햇살이 비치는 맑은 날이 그립다. 절기상으로 처서가 지나니 벌써 가을 기운이 느껴진다. 이제 머지않아 더위도 한 풀 더 수그러들고 쾌청한 가을 날씨가 우리를 반겨 줄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사람들이 너무 빠르고 너무 바쁘게 움직이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남들보다 빠르고 바쁘게 살아야만 뒤처지지 않고 앞서가며, 보다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은 심정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쉬고 싶어한다. 그런데 막상 바쁜 일상을 놓고 쉬는 시간이 있게 되거나 일이 없을 때에 우리는 어떻게 지내고 있는가? 대부분의 사람은 일이 없을 때에도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뭔가를 하고 있다. 아이나 어른이나 남녀 구분없이 뭔가를 하고 있지 않은가!

불과 몇십 년 전엔 생각도 하지 못했든 물질의 발달로 우리들은 홀로 가만히 있는 시간을 물질로부터 빼앗겨 버렸다. 혹자는 이렇게 반문할 것이다. 홀로 가만히 있으면 심심해서 견디기 어렵고 자칫하면 우울증에 걸릴 수 있는데 뭔 말이냐고.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은데 있다. 물질의 발달로 우리의 생활이 편리하고 풍족해지면서도 삶이 즐겁고 행복할 수 있다면 두 말 할 필요가 없다. 생각해 보라.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있는지? 공허함, 상실감 등을 느끼지 않고 몸과 마음이 편안하고 평화로움 속에 행복해 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라.

원불교 경전 첫 머리에 “과학 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물질을 사용하여야 할 사람의 정신은 점점 쇠약하고, 사람이 사용하여야 할 물질의 세력은 날로 융성하여, 쇠약한 그 정신을 항복 받아 물질의 지배를 받게 하므로, 모든 사람이 도리어 저 물질의 노예 생활을 면하지 못하게 되었으니, 그 생활에 어찌 파란고해(고통이 많은 우리의 세계를 지칭)가 없으리요.” 라는 법문이 있다. 한 마디로 표현하면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 이다.

이는 물질이 급속히 발달함에 따라 정신의 세력을 확장하여 그 물질의 세력을 항복 받아 물질을 선용(善用)할 수 있을 때 평화 안락한 삶이 펼쳐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정신의 세력을 확장하는 방법이 바로 홀로 가만히 있는 것이다. 이는 종교와 상관없이 누구나 할 수 있는 방법으로 한가한 시간이 있으면 가끔 홀로 가만히 있는 것이다. 그런다고 무료히 있으라는 말은 아니다. 요즘 아이들 말로 멍 때리고 있으면 곤란하다.

홀로 가만히 있되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거나, 깊은 호흡을 해보거나, 자신에게 베풀어지는 은혜를 생각해보거나, 원망하고 미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감사함을 찾아서 좋아하는 사람으로 돌리고자 노력해보자는 것이다. 또 나의 존재 가치를 찾아보고 느껴보거나, 지난 삶을 돌아보며 참회 반성을 하거나,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등 물질의 세계에서만 사는 나 자신을 정신의 세계에서도 지내보자는 것이다.

홀로 가만히 있는 것이 아주 쉬운 방법이지만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는 의외로 어려운 일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가끔씩 하기만 하면 단순하고 쉬운 이 방법이 우리의 인생에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큰 소득을 안겨 줄 것이다. 스트레스를 줄여 주는 것 외에 삶을 더욱 평화롭고 여유롭게 만들어 행복을 선사해 줄 것이다. 실제로 하기만 하면….

〈박덕규 원불교 서광주교당 교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