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최대의 명절인 추석이 엊그제였습니다. 작년에 소록도에 부임하고 나서 얼마 안 있어서 추석이었는데, 그러고 보니 소록도에 와서 보낸 시간이 벌써 1년이 넘었습니다. 그동안 여느 성당들과 다른 환경, 특별한(?) 구성원들과 보내면서 ‘나는 이곳 식구들과 얼마나 가까워졌을까?’ 1년을 넘기면서 되돌아보게 됩니다.

소록도 교우들은 하루 일과를 미사로 시작하는 분들이어서, 명절에도 어김없이 미사를 봉헌합니다. 그 가운데 추석 명절 미사는 먼저 돌아가신 조상님과 부모, 형제, 그리고 지인들의 영혼을 기억하면서 드리는 미사입니다. 그런데 환우분들 공동체인 아랫마을은 연세가 많으셔서 부모님들은 모두 돌아가셨지요. 자녀가 있는 분들도 없진 않지만 소수다 보니, 홀로 계시는 분들에게 명절은 부모님 생각이 간절한, 그래서 더욱 쓸쓸해지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미사가 끝나면 성당 수녀님들과 교우들의 수고로 조촐한 점심을 함께 나누며 서로 외로움을 달래는 시간을 갖습니다.

아침에 추석 명절 미사를 봉헌하러 나가, 미사에 오신 교우분들과 인사를 나눕니다. “잘 주무셨습니까?”, “좋은 아침입니다”, “일찍 나오셨네요!” 그런데 연세 지극하신 교우 한 분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신부님∼ 명절인데, 집에 가셔야제?” “예! 이따 미사 끝나고 점심 후에 다녀오려구요!” 대답을 해놓고 마음속에 걸리는 것이 있습니다. 물론 제 입장에서는 명절날 본가에 다녀온다는 것이 당연한 일이어서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는 대답이기도 합니다만, “집에 다녀오라”고 말을 건넨 분의 입장에서 보면, 갈 곳도, 찾아올 사람도 없을 수 있겠다는 사실이 문득 떠오릅니다. 그러니까 고향에서 조금 거리가 떨어진 곳에 와서 사목하는 젊은(?) 본당신부 처지까지 생각하면서 건넨 고마운 말씀이었는데, 상대방의 처지를 깊이 헤아리지 못하고 제 입장만 생각하며 드린 속없는 대답은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더라는 것이지요.

“추석 명절 잘 보내셨습니까?” 명절은 무엇보다도 마음과 마음이 만나는 시간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이것저것 준비하는데 들어가는 수고와 오고 가는데 치러야 하는 불편함도 있습니다만, 그래도 많은 사람이 그런 것들을 모두 감내하면서 고향으로 향하는 것은 그 만남에 대한 그리움이 아닐까? 그리고 그 만남에서 얻어와야 또 다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삶의 에너지 때문 아닐까?

오늘 아침 그 어르신이 다시 말을 건네오셨습니다. “신부님∼ 집에 잘 다녀오셨어?” “예, 덕분에 잘 다녀왔습니다. 고맙습니다!” 젊은 신부는 교우들의 사랑을 먹고 하루하루 살아갑니다.

〈서달원 고흥 소록도성당 주임신부〉